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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19일 : 인생은 알 수가 없어

 

2년 꼬박 살던 방을 새 주인에게 넘겼다. 밤 열시 삼십분. 그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집 근처 한방병원에서 엎드려 침을 맞는데 진동이 북북 울렸다. 두 번은 문자다. 잠깐의 침묵. 실눈을 가만히 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하의 자질은 겁나 높지만 안타깝게도...'라는 문자였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재빨리 따라붙는다.

 

최종면접에서 느낌이 좋았다. 오라는 말도 없었는데 '가네 마네'를 놓고 가족들과도 분분했으며 내 안에서도 분연했다. 일주일 내내 머리가 아파 잠도 이루지 못했었더랬다. 이게 바로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의 좋은 예. 그러니까 이미 될 꺼니까 방을 내놨다.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일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떨어지게 되면 방 내놓은 게시물을 삭제해버리면 되니까 그만 아닌가. 그러나 아뿔싸! 글이 너무 친절했다. 사진도 필요 이상으로 적당했다. 방을 내놓은지 하루만에 계약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이틀째인 오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예쁜 웃는 눈에 대고 차마 '취소할게요'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탈락했다.

 

어. 그러니까 나는 원래 일만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집도 없고 일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깨닫지 못했는데 사랑도 없는 사람임을 집주인 부부가 상기시켜 주셨다.

 

집주인 아줌마 : 아가씨 남자친구 있어?

세입자 : 아뇨 없어요.

집주인 아줌마 : 아가씨는 있지?

나 : 아뇨. 저도 없는데요.

집주인 아저씨 : 있잖아!!!

나 : 헤어졌어요!!! (언제 보셨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 삼포세대가 대체 뭘 포기하는지 찾아보았다. 삼포세대는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하고 오포세대는 나아가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며, 칠포세대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단다. 서늘하다. 싸늘하다 못해 춥다. 얼른 꿈과 희망에 부합하는 일도 찾고, 집도 찾고, 사랑도 찾아야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찾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도다.

 

 

(*) 보너스로 어제 카톡 공개. 제목은 '자웅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