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부터 시작된 누군가의 하소연.
아침까지 이어진다.
편의점에 가면 어디로 가장 먼저 눈을 돌리고, 무엇을 망설임없이 집는가. 나는 늘 삼각김밥이고, 누군가는 맥주일 것이며, 누군가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뒤적거릴 것이다. 심지어 삼각김밥은 전주 비빔밥, 치킨마요네즈맛, 돌솥비빔밥 등 척 떠올려보기에도 열 가지 맛은 넘는 듯 하고, 맥주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사소한 입맛마저도 이토록 세분화되어 있는 마당에 사랑이야 말해야 무엇하랴.
다들 고집하는 사랑의 패턴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미세한 변화 정도는 있겠지만, 다들 그야말로 고집하는 사랑의 패턴이 있다. "난 왜 연애할 때마다 이 모양이야?" 라고 푸념하지만, 사실은 '연애할 때마다 이 모양'을 철저하게 고집할 뿐이다. 나는 (아직 다행히 지나지 않은) 이십대의 대부분을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는데 보냈다. 정말로.
내가 하드웨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기는 꽤나 쉽지 않았지만, 나를 오래 보아온 많은 친구들이 나의 뉴 보이프렌드를 볼 때마다 하나같이 입모아 했던 말이다. "또 저렇게 생긴 애냐!" 그럼 어떡하겠는가. 그렇게 생겨먹은 애한테만 반응하는 내 심장인걸.
자려고 누운 새벽에 페이스북 메시지가 뜬다. "카톡 좀 보라고!"
오래비다. 사랑에 온 정성을 다 쏟지만 여자가 질려서 떠나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라치면 떠났던 여자가 '오빠 어쩜 이렇게 나를 쉽게 잊을 수 있어?' 라고 빽 소리치는. 그게 오래비의 패턴이다. 여자를 질리게 했다가 다시 그립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진 남성이다. '나는 좋은 남자야!'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길래 열심히 받아줬는데, 어느 순간 대답이 없다. 지가 먼저 잔다. 아놔!
그러고보니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랑의 패턴이 있다. 어떤 옷의 무늬는 쏙 맘에 들고, 어떤 옷은 난해해서 걸칠 엄두도 안나는 것 처럼, 사랑의 패턴도 사람마다 제 각각이다. 나처럼 얼굴에 집착하는 사람 ("남자 얼굴 뜯어먹고 못 산다!" 귀 따갑게 들었다. 내가 얼굴 뜯어먹어야 살 수 있는걸 어쩌라고.), 잠시라도 옆에 누군가 없으면 불안해 못 견디는 사람, "사랑은 시험지 같은 거예요! 몰라도 끝까지 풀어야죠!" 사랑이랑 시험문제는 아무리 다르다고 설명해도 무조건 사랑을 문제삼아 끝까지 풀어보려던 공대생, 사랑이 철마다 갈아입는 옷과 같은 사람, 아기 키우듯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처럼 품고 보살피고 뒷바라지 하는 사랑. "일과 사랑 중에 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사랑쯤은 없어도 살 수 있어!" 아직도 머리에 맴도는, 사랑에 대한 철저한 냉정을 유지하고 있던 시선.
이 세상에 꽃무늬가 제일이지! 자신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이라고 감히 말하겠는가. 그냥 걸쳤을 때 예쁘고 잘 어울리고 편하면 된다. 쉽게 질리지 않으면 더 좋고. 나는 세상에서 꽃무늬가 최고라고 믿는 사람이고, 20년 넘게 한번도 꽃무늬를 배반한 적이 없으니 나는 앞으로도 내 사랑의 눈부신 패턴을 그대로 유지할 듯 싶다. 그리고 오래비, 너무 걱정하지 마. 새로운 여자가 떠나가더라도 다시 곧 돌아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