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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 충실한 기록

 

 

 

 

 

 

연휴 기간에 집에 다녀왔다. 서울에 살다보니 연휴면 여지없이 '집'으로 향하는 내 행보가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가까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의 여행을 계획해봄직도 한데 으레 집이라니. 이번 연휴에는 재충전도 하고 싶고,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동안 스스로를 혼자 좀 방치해두고 싶어서 '집에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집에 가는게 뭔 유세라고.

 

그러나 시간차로 전화를 해대는 부모님때문에 못 이기는척 하고 또 다시 집이다. 서울역에서 KTX에 몸을 실으면 채 두시간이 안 걸리는데, 열차에 가만히 앉아있는 그 시간이 때로는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길게 느껴지는 한없는 시간. 밤기차에 몸을 실으면 차창 밖으로 불빛들이 반짝반짝해서 우주를 유영하는 은하철도 따위를 떠올려 볼 때도 있다. 꽤 자주.

 

집에 내려가서 점점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도, 자잘한 기쁨에도 귀 기울이지 못한다. 가만히 고향집 내 방에 누워서, 매일 이 방에 몸을 뉘이던 때를 생각하고 이 방을 떠나오기 전과 후를 생각한다. 잊고 있던 물건들을 어루만져보고 잊고 있던 장면들을 끄집어낸다. 아 맞아. 아 그때.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배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는다. 모처럼 여유가 생긴 어머니가 맛있는 것들을 잔뜩 해주신다. 가래떡으로 만든 떡볶이, 김밥, 김치 볶음밥, 납작만두. 닭도 한마리 시켰다. 아버지를 졸라 산에도 잠깐 다녀왔다. 바람이 시원하다. 이틀동안 쉴새없이 오븐을 돌려 뭔가를 잔뜩 만들어냈다. 시금치로 만든 빵, 시금치로 만든 마들렌, 시금치로 만든 머핀. 바나나로 만든 머핀, 양파로 만든 케이크.

 

'충실한 기록' 에 대해서 조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