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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4년 6월 11일 : 비오는 새벽 (충실한 기록일지)

 

△ 이미지 출처 : 롯데제과

 

 

 

아직 장미도 지지 않았는데 장마가 오는걸까요.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깨부실듯 때리는 하루였습니다. 퇴근 무렵에는 잠깐 그쳤어요.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서 김밥 몇 개를 (사실은 꽤 많은 양을) 주워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수면시간이 여섯시간 정도이고, 그 이상을 넘겨 자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정 무렵에 잠이 깼습니다. 새벽 세 네시까지 잠들지 못할건 이미 각오하고 있고요.

 

저는 소개팅의 그 남자와 어찌저찌된 영문인지, 거의 매일 연락하고 지냅니다. 그리고 새벽 한 시쯤에 집 앞으로 와서 잠깐 얼굴을 보고 가겠다는 그의 말에 알았노라고, 올 때 º설레임 하나만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바나나 맛을 제일 좋아하지만 없다면 바닐라도 괜찮습니다.' 라는 디테일한 요구도 있지 않았습니다. 남자라는 동물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이야기 해줘야 알아듣는다면서요. 좋아하지 않는 커피맛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피로와 슬픔이 뒤섞인 선잠같은 걸 자고 난 뒤에는. 

 

잠시 후에 소개팅의 그 남자가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집 앞에 왔습니다.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저 이거 먹으면 안되요?" 라며 설레임을 덥석 꺼내서 막 먹기 시작하는거예요. 어어... 엄연히 본인의 돈을 주고 사온 본인의 것이니  "안돼요!" 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분좋게 바라만 볼 수도 없고. 바닐라맛 설레임이 빠지고 난 봉지에는 커피맛이.

 

"왜 저랑 계속 연락하세요? 저는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한 남자인데요." 라는 질문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아마 계속 만난다면 만나게 되는 그 이유도, 만남을 그만 둔다면 그만두게 되는 그 이유도 '설레임' 하나로 모아질 것 같네요. 황당하고 웃겨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