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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취향 ; 그리고 너의 연애

 

 

오스트리아 빈에 판다는 그 유명한 모짜르트 쿠겔 초콜렛. 단면이 5겹이다.

 

 

젊은 애들은 이런 말을 많이 쓴다. '개취' , '케바케'

 

나와 한살터울인 내 동생은 단지 소속된 바운더리가 '대학'이라는 이유로, 나와 나누는 대화의 말끝마다 '케바케!' 를 갖다 붙인적이 있는데 소속된 바운더리가 '심히 올드한 직장'인 나는 '뭔 소리야 이 자식아!' 라고 버럭 역정을 냈던 적이 있다. 케바케. 케이스 바이 케이스.

 

 

*

 

영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영화 개봉 그 무렵 한 잡지에서 인터뷰 한 내용이 있다. 영화가 2009년도에 개봉했으니 벌써 5년전 일이구나. 그의 하고 많은 멋진 말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20대에는 무한한 연애를 할 것' 이 한 문장만 가슴에 남아 품고 다녔다. 무한한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무안한 연애만 하다 끝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의 20대여.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인가, 연애란 과연 이런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져 연애에 올인하지 못했고 연애를 하지 않는 동안에는 '무한한 연애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쉬어서 되겠는가!' 라며 전전긍긍 했던 것 같다. 이도 저도 돌이켜보면 다 연애의 긴 연장선 상에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뭐, 20대에는 누구나 연애를 하거나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거니까.

 

나는 양익준 감독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연애라는 건 타인을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인거다. 20대는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하는 시기이니, 그래서 타자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비춰보는 연습을 하라고 양익준 감독님이 말해준거다. 좀 더 디테일하게 풀자면 생에 대한 자기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기랄까.

 

나와 다른 놈이 있다. 그 놈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으면 그 놈과 나와 맞닥들이면서 발생되는 지점도 없겠거니와, 있다 한들 일순간의 점으로 반짝 끝날 뿐이다. 그 점을 말로 풀이하자면 '뭐야 저 미친놈은.' 정도가 되겠지. '뭐야 저 미친놈은'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게 되면 그게 '어머 저 미친놈은.' 이 되고, 그게 연애다. 그게 다다.

 

나는 본래 어릴때부터 내 취향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고 정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 그걸 주변에서는 '예민하다'라고 표현한다 - 연애를 통해 나의 어떤 새로운 면모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나의 영향력을 설파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애정 이외의 다른 감정을 가지면서 재미있어 한 관계의 경우도, 나의 취향을 따라주기 보다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랬다. 연애를 하면 두 사람의 공통 분모가 생기고, 그 영역이 시간과 함께 점점 더 넓어지겠지만 나는 그 교집합이 그 사람의 고유 영역보다 커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 교집합이 넓어짐에 따라서 그 사람만의 고유 영역도 함께 넓어지기를 원한다. (굳이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나는 자기만의 어떤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 굉장히 큰 매력을 느끼는데 이게 점점 심해져서 그저 그런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고 표정관리가 잘 안된다. 큰일이다.)

 

연애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즘 새롭게 알게 된 나의 취향 몇 가지.

 

 

* 스타일은 있지만, 브랜드에는 별 관심이 없다.

* 내가 말로 풀지 못하는 어떤 이미지에 대한 질감을, 누군가가 '말'로 푸는 걸 봤을 때 굉장한 쾌감을 느낀다.

* 한번도 향초를 켜본적이 없다.

* 배경에 관심이 전혀 없다.

* 옷 잘입는 남자를 (내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훨씬) 좋아한다.

* 서울에 살다보니 사투리에 민감해져서 몇 마디만 듣고도 고향 파악하는 능력이 월등해졌다.

*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내 취향에 대한 저평가가 돌아올까 하는 두려움)

* 카페에서 초코라떼 시키는 남자를 보면 그렇게 귀엽다. (내 친구 남자친구 이야기다. '최고의 남자'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더니 어리둥절해 했다.)

 

 

연애를 통해 좀 더 자세하고 좀 더 민감한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취향을 다 빨아들인 뒤 나의 고유 영역을 확장시키리라.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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