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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제 한 몸 잘 건사하는 일

 

 

 

 

물이 떨어졌다. 제 때 사놓지 않으면 주말 내내 마른 방바닥에 배를 깔고 목말라 하거나 땡볕 더위에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비칠거리며 물을 사러 나가야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물 사기' 잊지 않고 다이어리에 잘 적어두었다가 요런 저런 가격비교와 적립금과 쿠폰을 끌어써서 물을 구입한다. 

 

내가 5kg 한 박스를 구입하자마자 그 이튿날부터 '파격 세일'에 들어간 파프리카 농장에는 '격파'를 날려주고 싶다. 산 지 꼭 일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갈무리를 하지 않아 꼭지부터 시들어가는 파프리카들은 일단 아쉬운대로 냉장고로 옮겨서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파프리카를 대량 구매하면 반드시 하나씩 비닐로 꼭꼭 밀봉해서 냉장고에 넣어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귀찮아서 번번이 요리조리 미루다가 후회한다.

 

칠일 중에 오일을 빈 속으로 출근하는 아침이지만, 회사 가는 길에 자리한 파리바게트가 일찍 문을 열기 때문에 종종 들러서 샌드위치와 또띠아 같은 것을 구입하기도 한다. 대각선 맞은 편의 뚜레쥬르도 문을 일찍 연다면 좋을텐데. 

 

밥을 먹어도 30분이 지나면 배고프기 때문에 간식이 없으면 불안하다. 여유가 있는 날은 집에서 삶은 계란이나 고구마 같은 걸 준비해 출근 하기도 하는데, 왜 고구마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지 않다는 착각에 빠지는 걸까. 거짓말 조금 보태 강아지만한 고구마를 세 마리 먹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 배가 부르다. 볶음밥이나 비빔밥 같은 ○○밥 종류는 하염없이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점심때 계란을 두장이나 올린 김치 볶음밥을 아주 많이 먹고 나서 스윽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다녀왔다. 간식을 사러. 뭔가를 손에 또 쭐래쭐래 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탄수화물 중독자!"라는 꽤 정확한 지적이 날아온다. 

 

치즈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데, 이틀 전에는 스트링 치즈 5개들이 한 팩을 사놓고 앉은 자리에서 다 먹고는 대량구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3만원 이상 사면 무료배송에 쿠폰까지 준다는 말에 혹해, 또 열심히 치즈와 샐러리, 계란 등을 장바구니에 쓸어담으며 3만원 맞추기에 열을 올렸다. 토마토는 치즈보다 더 많이 좋아하는데, 마트에서 자주 사다먹다가 10kg를 구입했다.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작년에 당근 10kg를 샀다가 죄다 싹을 틔우고 버린 기억은 왜 결재를 클릭하는 그 순간에는 까맣게 기억이 안나는건지.

 

 

 

건사. 사전을 찾아보면 '건사' 라는 단어 안에 이미 '잘 하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착하다'라는 말의 속뜻이 '호구' 인 것 처럼. 아무튼 내 한 몸 '잘' 건사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구나. 밖에 내놓으면 허우대 멀쩡하고 '얼굴 좋다'라는 인사도 듣고 다니니, 내 한 몸 건사하는 일이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왠만큼은 해내고 있나보다. 곧 여름을 맞이하야 내 한 몸 건사를 위해 지인들과 망원동 족발귀신에 갈 예정이며, 논현동의 평양면옥에도 들릴 예정이다. 물론 수시 때때로 섭취하는 연남살롱의 팥빙수는 말할 것도 없지.

 

'건사' 가 '식사'와 동의어는 아닐텐데, 어쩌다보니 건사를 죄다 식사와 식사 사이의 간식으로 풀어놓았다. 건사가 식사로 이루어지는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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