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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사랑이란 담담하고 벅찬 것이다

 

탱탱한 윤기로 반들반들 빛나는 신선한 붉은 빛. 사랑의 빛깔!  

 

 

초밥을 먹으리라! 감기 기운을 안고 초밥을 먹으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입 편집자와 함께. 저녁 같이 드실래요?

 

<저녁 같이 드실래요?>라는 어찌보면 야리구리한 同제목의 웹툰도 있지만, 초밥집에 여자 혼자 가기는 어쩐지 조금은 뻘쭘하고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신입 편집자분과 어떤 대화 끝에 '저는 오늘 저녁에 초밥을 꼭 먹어야 겠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를 같이 하실래요?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는 담백한 뻐꾸기를 날렸다. '30분만 고민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괜히 내가 신혼 + 유부남에게 부담을 안겨준 것 같아 같이 가지 않으셔도 된다며 결국에는 끝끝내 손사래를 쳤지만, (하긴 총각이었다면 더더욱 부담스러워서 같이 가자는 말을 차마 못 꺼냈을 것 같다.) 라멘을 먹고 싶다며 함께 발걸음 해주셨다. 착한 분. 거기에는 라멘이 없는데 어쨌거나.

 

연남동에서 꽤 이름 날리는 자그마한 초밥집. 퇴근 하고 바로 왔는데도 좌석이 거의 꽉차있다. 하긴 모든 사람이 일을 한다거나 이 시간에 퇴근을 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나와 다른 삶의 패턴을 직설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순간 할말이 없어진다. 낮에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힐끗 훔쳐본 리치몬드 베이커리 안이 만석일때의 느낌과 마찬가지로.

 

통통한 모듬 초밥 세트를 시켜놓고 일단 사진을 몇 장 박은 뒤에, 어색한 사이답게 종류별로 하나씩 상대를 의식하며 먹기 시작한다. 너가 연어 먹으면 나도 연어먹는거고, 너가 광어 먹으면 나도 광어먹는거얌. 퐈이야. 초밥 두어점을 집어먹고 편집자 분이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여지껏 먹어본 초밥 중에 제일 맛있다' 라고 읊조린다. 나는 소리를 최대한 낮춰 '우리동네에는 더 죽이는 초밥집이 있다. 나도 아직 못 가봤다.' 라며 고급 정보를 나눠준다. 편집자 분이 포장을 해가야겠다며, 먹다말고 포장을 요청했다.

 

그 모습이 참 예뻐보였는데, 맛있는 것을 먹으면 누군가가 자연스레 생각나는 그 생각의 수순이 참 오랜만이고 담담했고 소박하지만 특별해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무언가가 너무 맛있어서, 내가 본 어느 풍경이 너무 특별해서, 내가 읽은 어느 책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나 어렸을 때,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되는 두 분도 몹시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타지에서 머물렀다. 아마 낯이 설은 사람들과 밥상을 마주하며 객적은 밥알을 뒤적였을 것이다. 밥알과 함께 마음이 설걱거렸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밥상에 모아놓고는, 늘 아버지의 밥을 고봉 가득히 푸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밥을 먹기 전, 아버지의 밥 그릇을 보며 "아버지, 맛있게 드세요." 하고 인사 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는 곁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쓸데없는 인사보다 나의 허기가 더 다급했고 절박하게 와닿았기에 그런 절차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져 그 사랑을 헤아릴 길이 없다가, 문득 문득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나를 온통 설걱인다.

 

오늘 본 댓글 하나가 끝끝내 나를 따라다니는 밤. '그 애가 꼭 아니어도 되지만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누군가를 떠올리던, 좋은 음악을 들으면 너에게 만큼은 알려주고 싶던, 읽던 책의 문장 하나를 핸드폰에 꾹꾹 눌러 찍던 나. 앞으로의 나의 연애는 다시는 그때의 나같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래도 어쩌면 하고 기대하는 알량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에 자꾸 자꾸 연애를 미루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따듯하게 손을 맞잡았을 때, 어색하고 긴장되고 심장의 선덕선덕하는 느낌이 묘하게 기분좋은 그런 연애를 하고 싶다.

 

 

 

아내에게 차려준 초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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