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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호흡이 가빠지고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고 하늘이 깨끗해 밖에 나다니기 참 좋은 날씨였건만, 날씨를 아까워하며 집에 콕 틀어박혀 있었다. 며칠전에 같은 건물의 1층 세입자가 나갔는데, 오늘은 집주인이 그 방을 손본답시고 새벽부터 도배 하랴, 물건 옮기랴 우당탕 거리는 통에 시끄러워 잠시 깼다. 고만 고만한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다른 삶을 쪼개 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세입자가 나가고 그 방을 휘 둘러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방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작은 방이고, 방 안 여기저기에 놓인 몇 가지 사소한 물건들이 살던 주인의 취향을 알려준다. 색이 맞지 않는 싸구려 바지 집게 몇 개가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고, 책상 위에는 먼지 묻은 휴지 한 롤이 있다.

 

디자인은 삶을 규정한다.

 

어떤 공간에 의자가 놓여있다면,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은 자연스레 의자 위에 앉을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컵을 내민다면 양손으로 컵을 감싸쥐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화장실에 욕조가 딸려있다면 지친 하루의 끝에 욕조 안으로 기어 들어가 몸을 뉘일 수 있다. 욕조가 있었던 나의 유년시절에 나도 욕조 안으로 자주 기어들어갔고, 그래서 수도세가 많이 나온다고 자주 혼났다.

 

공간이 나에게 던지는 뉘앙스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나는, 그래서 처음에 원룸이라는 곳에 내 인생의 어느 부분을 뭉툭 떼어내어 밀어넣어야 했을 때 적잖이 당혹스러웠고 슬펐다. 냉장고와 침대와 책상과 화장실이 한 군데에 있는 이 공간은 과연 어떤 곳인가. 이 공간에서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쑤셔 박아야 하나. 이사를 위해 방을 보러 다녔던 작년 여름의 어느 하루의 몇 시간동안, 나는 그저 방을 보러 다녔을 뿐인데 한 사람의 삶을 죄다 들여다 본 것 같아 안쓰러웠고, 방에 머무르던 주인들도 전 생애를 들킨 것처럼 내 앞에서 괜히 겸연쩍어했다.

 

나는 오늘 내 생애가 다 들어있는 작은 방안에서 하루종일 머무르며 버거킹 콰트로치즈버거를 먹고, 오니기리를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 콜라를 마시고, 초코칩을 먹고, 십년 전 영화를 보다가 말다가를 하며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해.' 를 반복하는 중이다.

 

오늘 오후 홍대에서 있었던 세월호 시위에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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