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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4년 4월 23일 : 쎈트럴 퐈크

 

 △ 천오백원의 행복.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천오백원어치가 아닐까요.

 

 

퇴근을 하고 볼일이 있어 발걸음을 빨리해 집 쪽으로 옮기던 찰나 '뭐 하자고 계속 이렇게 쫓기면서 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늘 시간에 쫓겨서 뛰고, 자전거를 빨리 타고, 언제나 마음이 종종종종 거리거든요. 1년중에 제일 좋아하는 4월이 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데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바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반대방향으로 홱 돌아 마을버스를 잡아타고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초록색도 좀 보고 걷고 쉬고 싶었어요.

 

대구에서 인생의 25%를 보낸 나는, 서울의 참 좋은 점 중의 하나가 '공원이 여기저기에 참 잘 갖춰져 있다' 라는 거예요. 우리 동네만 해도 서울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는 공원이 있는데,  TV가 없어 드라마는 못봤지만 그 유명한 벚꽃 키스 열풍을 몰고온 <신사의 품격> 촬영지이기도 하더군요.

 

외국영화보면 늘 애들이 선글라스 하나 쓰고 날고 뛰고, 툭하면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씹어대던데 '도대체 뛸 장소가 있어야 뛰지' 라는 생각도 여기와서 말끔히 없어졌구요. (공원이 있어도 안 간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 아무튼 회사에서 마을버스를 잡아타고 대여섯코스만 가면 하늘공원이 나옵니다. 한강난지공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작년에 하늘공원 한번 갈려다가 길을 잃어서 헤메고 못 간 경험이 있어서 오늘은 월드컵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타고 내리기도 쉽고.

 

공기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닌데, 요즘 출근할때 숨이 유달리 턱턱 막히는걸 느낍니다. 공기 자체가 너무 탁하고 매캐하다는걸 느껴요. 늘 숲을 끼고 출퇴근 하는게 나의 작은, 어쩌면 무지무지 큰 소망이기도 한데 오늘 아침에도 숨이 턱 막혀서 계속 숲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학교 다닐때는 인문대 앞에 있는 자그마한 숲길을 참 좋아했었는데 글로벌 센터인지 우라질 센터인지를 짓는다고 거기 있는 꽃과 나무들을 다 밀어버렸거든요. 운영도 잘 안되는 거 같두만. 쯧쯧.

 

버스에서 내려서 도로변을 뒤로하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아 이제야 좀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요즘 깨있는 내내 날을 세우고 사는 것 같아요. 바짝 곤두서서는 더 과도하게 화내고, 짜증내고, 불쾌해하고. 저녁을 딱히 챙길 생각은 없었는데 역시 배가 고픈걸로 보아 하이에나처럼 편의점을 두리번 거린 결과 매점을 하나 발견!

 

 

메뉴들을 잔뜩 써놓았길래 기대감을 가지고 입장했는데 둘러보니 핫바밖에 없더라구요. 난 핫바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하나있는 남동생은 핫바를 되게 좋아하고요. 늘 명절무렵 휴게소에 들리면 엄마가 남매 손에 들려주는, 혹은 들려주고 싶어하는 요기거리도 핫바입니다. 엄마가 핫바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뭔가 평소에는 잘 먹을수 없는 휴게소 특유의 음식을 자식 손에 '들려주는' 재미를 만끽하시는 것 같다고나 할까. 다 큰 어른이 뭔가를 손에 들고 쭐쭐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아이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엄마가 핫바를 들려주려 하실때 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는데, 오늘은 매점에 핫바 밖에 없기도 하고 엄마가 휴게소에서 들려주던 기억도 생각나고 그래서 뜨끈하다못해 비닐까지 흐물흐물한 핫바를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평일 퇴근 직후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텅 빈 벤치에 앉아 핫바를 먹으면서 호숫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무가 바람에 샤샤샤 흔들리는 것도 계속 바라보고, 하늘을 그야말로 예술적으로 쪼개놓는 나뭇가지들도 바라보고. 그냥 계속 모든 것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시간.

 

 

 

숲 사이를 잠깐 거닐었는데, 다니던 대학의 대학원동 맞은편에 마련되어 있던 벤치와 의자가 생각나서 잠깐 학교다닐 때 내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고요. 거기 앉아서 김밥이랑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지만, 자판기에서 실론티를 뽑아서 마시는게 낙이었는데. 학교 다니던 내내 마셨던 실론티 양은 실로 어마어마할껄요. 실론티 아니면 립톤 아이스티를 맨날 달고 살았으니까. 특히 여름에 좋아하는 브랜드의 음료수를 줄곧 마시는 일은 정말 기분 좋은 것 같아요. 하하.

 

 

 

안도현 시인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을 사진 제목으로 붙여보며, 저녁이 어둑어둑 내리는 공원을 재빨리 빠져나왔습니다. 어두워진 공원을 걷는건 싫으니까요. 음. 앞으로 한동안은 싫어하는 핫바를 먹을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네요. 그 사이에 핫바가 좋아질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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