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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자그마한 삶의 질

 

멀리서 보면 무척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나무 전체를 벌레가 갉아먹어 엉망진창 이었다.

개살구만 있는게 아니었다. 개나무도 있다.

 

 

 

며칠전, 자전거를 타다 출근길에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바지와 무릎이 터지는 대 참사를 겪었지만 아무튼 자전거가 요즘 내 삶에 잔잔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누군가가 내 품에 자전거를 덥석 안겨준 어느 토요일의 아침에는 사실 달갑지 않았다. '기어코 나를 자전거에 태우는구나. 그렇게 싫다는데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틀을 집 앞에 세워두고, 월요일 출근길에 조심히 몸을 자전거에 실었을 때 (어떤 사정으로 인해 거의 10년만에 타보는 자전거다. 중간 중간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몇 번 탄적은 있지만. 난 자전거 공포증을 줄곧 유지 중이다.) 즉각적으로 몸이 알아차렸다. 아 너무 오랜만이야. 이 기분.

 

4월의 봄바람을 살며시 품에 안고, 두 바퀴에 내 몸을 온전히 내맡기고 달리는 기분이 썩 좋다.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지만 너무 좋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면서 코 끝을 휙 스쳐가는 아카시아 향과 라일락 향을 맡는다. 퇴근길엔 좀 위험하지만 멀리까지가서,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강변도 달렸다.

걸어가기엔 좀 부담스러운 모래내 시장의 떡볶이 집도 갈 수 있다. 평소에는 다니지 않는 길로 간 덕분에 어느 집 담장에 활짝 핀 자목련도 구경했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한 덕분에, 퇴근 후에 일정을 두 개나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다른 출판사의 북콘서트도 참석했고, 그 뒤에 내 개인적인 일도 보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아 진짜 이런게 바로 삶의 질 향상이지!" 라는 소박한 야호를 외쳤다. 야호!

 

최상, 상, 중, 하, 최하. 사과 박스 겉면에 찍힌 사과 품질은 검수원이 체크를 하고 매기겠지만, 내 삶의 질은 온전히 내가 매긴다. 중고 자전거 한 대 생긴 것이 내 삶에 이토록 기쁜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그렇다면 Jeep 차가 생기고, 내 소유의 집과 큰 정원이 생기고, 돈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김치냉장고를 무척 좋아하니까 (김치를 좋아하지는 않음.) 집 안에 김치냉장고가 한 세대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기타 선율에 목소리를 실을 수 있다면, 매일 아침 숲을 끼고 산책할 수 있다면, 꽃을 잘 만질 수 있다면, 강아지를 끌어안고 실컷 뛰어놀 수 있다면, 보드를 잘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앞의 것들은 아직 내게는 좀 멀고 어려운 것이지만, 뒤의 것들은 내가 생각했을 때 즉각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다. 기타나 보드처럼 연습이 필요한 일도 있고, 조금은 번거롭게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도 있다. 으음. 삶의 질. 자전거를 탈 때 기분이 좋은 것 처럼 향해가는 그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 하나하나 해 보면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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