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일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든 어찌됐든 반가운 것 같다. 좋은 의견이라면 반가움과 더불어 감사함까지.
출판사 마케터로 일한지 조금 있으면 (벌써) 2년이다. 와아. 그동안 나는 혁신적인 매출성장을 이루어냈고, 브랜드 이미지 쇄신에 공헌한 바가 크며, 독자들의 애호도가 크게 증가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나 입사전이랑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출판계는 10년째 꾸준히 불황인 것 같고, 심지어 올해는 좀 더 불황인 것 같고, 정말 이상한 전화까지 친절하게 받아주는데 그게 브랜드 이미지 쇄신에 공헌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알길이 없다.
출판계는 아직까지 '마케터'라는 개념이 모호한 업종이다. '마케터'와 '영업자'의 역할이 애매하다. 책이 나온다. 영업자가 서점들을 돌며 서점주에게 비싼 술 및 기타등등을 접대한다. 우리 책 좀 사달라고. 수금이 안되면 돈 좀 달라고 앓는 소리를 해야한다. 그게 영업자다. 직종은 '마케터'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출판계에는 많은, 나이도 많은 영업자들이 떡 버티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서점들을 돌며 '영업'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개념도 역할도 애매한 출판계의 '마케터'다.
회사에 입사해 어느 정도 손에 일이 익었을 때는 회사에 대한, 정확히는 회사의 브랜드에 대한 애호도가 하늘을 찔렀고 "내가 이 회사의 이미지를 바꿔보겠다"는 포부가 상당했다. '마케터는 무조건 참신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사측에서도 나에게 기존의 어떤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기대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루종일, 혹은 몇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떠오른 (내 기준에) 주옥같은 아이디어를 고르고 골라 내놓으면 한 순간에 그야말로 '주옥 되기' 일쑤. 회사 창립 10년. 그동안 굳어질대로 굳어진 회사 내에서 생각하는 '참신'의 사전적 정의는 따로 있었고, 나는 우주적으로 '발랄'했던 것 같다. 회사의 고루한 사고 방식은 절대 나의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없음에 분개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드는 공력을 최소화하면서 회사 내에서도 '발랄하다, 번뜩인다, 좋다'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아가는 중이다. 고객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늘 막연하게 이벤트를 기획하고, 잘 될까 안될까를 걱정하며, 신청자가 많으면 (장소는 한정인데 좌석 부족 걱정 때문에)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회사 위신 때문에. 일단 쪽팔리잖은가.) 적은대로 고민하며 '가요. 못가요. 안가요' 주말에도 쏟아지는 문자를 받아내고 있으면 '아 쒸벌 내가 무슨 이벤트회사 직원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울화통이 치밀기도.
아무튼 나는 여기서 직원이자 마케터로써 블로그에 그림도 그리고, 행사때 노래하고 악기도 연주하며, 사진을 열심히 찍고, 경쟁 프레젠이션때문에 PT도 만들고, 매주 금요일마다 색다른 메뉴를 모색하며 밥을 한다.
심지어 도서 출판회에서 파리fly 다리에 도서 홍보 문구를 묶어서 날렸다는 한 출판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참신'한 아이디어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파리 다리를 홍보 툴로 쓸 생각은 못했을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적당한 참신함. 적당한 발랄함. 적당한 대중성. 너무 과하면 고객들은 피곤해하고, 너무 진부하면 따분해한다.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어렵다 어려워.
(*) 그래서 내가 연애를 잘 못하나.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해와 거짓말 (0) | 2014.04.08 |
---|---|
나의 어떤 곳에 나의 어떤 마음이 (10) | 2014.04.03 |
뭔 놈의 감정소모야, 아 증말. (0) | 2014.03.31 |
난 잠 못들고, 오늘도 여전히 피곤하겠네 (2) | 2014.03.25 |
그래, 감성적이고 감상적인게 뭐 어때서 :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3) | 2014.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