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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2 + 1 을 들고 읍소합니다

 

우리 회사 유일의 남자 직원 둘. 회사 창립 이래, 남자 직원이 둘 있어본 역사가 없다. 두 분의 키도 166.4 로 통일한 듯.

 

 

 

 

선배와 한 공간을 쓰면서 투닥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너무 소음이 심하니 대표님이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는거냐?" 하고 종종 물어볼 정도. 시트콤에서 보는 것 처럼 모니터 위로 물건들이 날아다니고, 급기야는 50cm 플라스틱 자를 들고 사투를 벌이다가 자가 조각조각 깨지기도. 내 허리위에 선배가 앉는 바람에 허리가 삐끗해 한동안 한의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한의원에 날 데리고 간 것도 역시 선배긴 하다. 육탄전에 이어 선배와 내가 요즘 돌입한 건 심리전인데, 선배가 먼저 시작했고 내가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매우 중요한 거래처와 전화 中)

 

-나 : 아 , 네네, 그래서 백 권을 주문하신다구요.

-상대방 : 네, 그러니까 *)(*@!)@*)#

-나 :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 상대방 : ㅕ*)!(*@_(#!@*

 

... 상대방의 말에 맞추어서 선배가 소리를 지르며 훼방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그날 도서 100권 주문은 날아갔고, 이를 갈며 나는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선배가 하는 모든 전화 통화에 훼방을 놓기 시작한 것.

 

-선배 : 네 , 그러니까 명함은 '귀도리'로 해주시고

- 나 : 귀두라니.. 귀두 리...

- 선배 : (입 모양으로) 미친거아냐?

- 나 : 귀두리로 해주시고요. 데헷!

 

 

-선배 : 피디에프 파일 넣어놨습니다.

- 나 : 피두에푸 파일 넣어놨습니다. 에헤헤헤헿헿

 

 

선배는 웃음 참는 것에 약하기에 상대방의 귓구멍에 대고 번번히 웃음을 싸지르거나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대방이 그냥 담백하게 '하하' 웃는 것 보다 뭔가를 억지로 참으면서 쥐어짜내는 진지함과 진지함 사이로 결국에는 삐져나오는 웃음이 훨씬 더 기분 나쁜 법이다. ) 웃음을 참으려 급한 마음에 나에게 전화를 홱 돌린다. 이 두가지 행동 모두 상대방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그지 없다. 일 얘기하다 말고 웃는 놈도 짜증나거니와 갑자기 전화 상대가 바뀌어서 처음 했던 말을 다시 해야하는 맥락은 상당히 피곤하고 기분 나쁘기 때문.  일이 점점 커지자 선배는 진지하게 나에게 장난을 그만둘 것을 읍소했는데, 나도 쿨하게 '그러마' 라고 승낙했다.그 뒤로 절대 전화할 때 소리로 훼방을 놓은 적은 없다. 그냥 선배가 전화통화 할 때 마다 모니터 너머로 빤히 쳐다보면서 씽긋 웃어준다. 그럼 이미 게임은 끝나있다.

 

- 선배 : 우읍 우우웁, 우웁 죄송합니프하하하하하하.

 

심지어 최근에는 회사 행사를 위한 장소 섭외 중에, 두 번이나 웃는 바람에 상대쪽에서 상당히 불쾌해했고 결국에는 초콜렛을 사들고 찾아가 읊조렸다. 나도 원인제공자로써 함께 가서 읊조리는 가운데 선배에게 내 초콜렛도 사내라고 땡깡을 피워서 초콜렛 하나 얻어먹는 진상짓은 잊지 않았다. 편의점에 파는 2 + 1 초콜렛은 이래서 꼭 필요한 거구나. 진상 두 마리에 초콜렛 하나는 뽀나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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