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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감성적이고 감상적인게 뭐 어때서 :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 홍대 벨로주. 밴드 크랜필드

 

 

어제 강백수의 출판기념 콘서트에 갔다. 나는 진즉에 <백수와 조씨>라는 대부분의 사람이 듣도보도못한, 심지어 사놓고 들어보지도 않은 희귀 앨범을 몇년째 소장중인데 그 백수가 그 백수다.

 

아무튼 스물여덟의 강백수가 책을 냈고, 책 귀퉁이에 '음악과 문학을 동시에 거머쥔 괴물'이라는 글귀를 보고 조금 이죽거렸다. 어쩌면 내가 꼭 갖고 싶은 두가지를 거머쥔 자에 대한 질투심이리라. 어쨌든 나의 질투심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오 나의 질투심!' 이라고 재단하기에 앞서 퍼뜩 떠올랐던 한 장면은, 내가 갖고 있는 <백수와 조씨> 의 막 만든듯한 앨범 자켓과 몇년 전 어느날 문득 TV를 틀었는데 <백수와 조씨>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고작 예선 심사의 문앞에서 심사위원에게 음악의 기본도 모른다는 질책을 받으며 광탈하는 장면이었다. "아씨, 앨범 괜히 샀나?" 괜한 호기심에 쓰레기 앨범을 구입했다는 나의 후회.

 

자, 다시 몇 년뒤의 '음악과 문학을 동시에 거머쥔 괴물'의 콘서트로 돌아가보자. 나는 뚱뚱한 사람을 싫어한다. 뚱뚱한 가수는 더 싫어한다. 외모도 기름지고, 성대도 기름지다. 처음에는 강백수의 꿀렁대는 뱃살이 신경쓰여 노래에 집중이 안됐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조금 울었다.

 

그의 노래 <감자탕>처럼, 강백수의 노래 대부분이 다 감자탕 국물 위에 둥둥뜬 기름처럼 느끼했다. 왕따 당해 애들한테 발차기 당하던 이야기, 천원 아끼려고 참치김밥 못먹고 원조 김밥 먹는다는 이야기, 헤어진 여친 집에 벗어놓고 온 캘빈 클라인 팬티 이야기, 타임머신이 있다면 30년전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판교 쪽에 땅을 사라고 귀뜸을 하겠다는 이야기... 이미 피곤하고 노곤한 내 삶의 더께에 타인의 무게까지 싣기는 곤란해서 그 재밌다는 드라마도, 그 멋있다는 도민준도 안보는데 왠 기름진 가수의 기름진 얘기를 육성으로 듣고 앉았나.  

 

기름지고 기름진 노래들 가운데, 비계만 더덕더덕 붙은 등뼈처럼 고품격 비계니즘으로 내 머리와 귀를 후려친 노래가 바로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라는 노래다. 내용인즉슨, 학창시절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여자는 공부를 썩 잘했고 나는 못해서 주변 반대로 헤어졌다, 그깟 공부해서 내가 공부로 너를 이겨보겠다, 나는 지금 가수인데 너는 사법고시 패스했다는 소식 들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이기냐, 설마 내가 지금부터 공부해서 사시패스 하더라도 너는 못이기겠지, 왜냐면 넌 나보다 호봉이 세니까.

 

호봉 얘기가 나올때 나는 거의 뿜을뻔했다. 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타인과의 비교와 이겨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 그 도가 어느정도였냐면 초등학교때 집에서 학교를 걸어다니는데, 가는 길에 같은 반 친구 집이 있어서 종종 만나서 같이 가곤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했던 생각은 '억울하다' 였다. 나는 학교와 집이 멀어서 20분 일찍 나와야 하는데, 얘는 학교와 집이 우리집보단 가까워서 10분만 일찍 나오면 되는거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불공평한 등교의 출발선은 과연 누가 그어줬는지, 나는 왜 늘 불공평만 비교에서 꼭 애로 사항이 많은 쪽인건지. (거야 당연히 나보다 못한 사람이랑은 비교를 안하니까.)

 

심지어 여덟살때 일기장에 '내일'이라는 글을 써서 엄마가 학교로 불려온 적도 있었다. 일기장을 분실했는지, 다행히 어디에 곱게 처박혀 있는건지 원본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지만 대충 내용은 이렇다.

 

제목 : 내일 /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산다 / 내일을 기다린다 / 그렇지만 우리가 기다리던 내일은 오늘이 되고 / 우리는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

 

이런 내용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자녀분이 글에 훌륭한 재주가 있으니 잘 키워보시기 바랍니다'라는 보람찬 격려를 받고 귀가 조치를 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나 좀 더 키워주실 것이지, 꼬박 십년을 계속 내버려두다가 수학을 못해 인생의 통렬한 자괴감을 토로하던 열여덟의 딸아이를 위해 수능 세달전 고액 수학 과외를 시켜주셨다. 

 

아무튼 어린 나이에 느꼈던 '각자에게 불공평한 인생의 출발점'은 크면서도 그 장면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할 정도로 내 눈앞에서 하염없이 되풀이 되었다.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와 깨달은 사실은,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지만 누구나 학교를 향해 등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릴때는 그걸 몰랐다. 커서도 그걸 몰랐다. 이제야 조금 나에게는 '등교길'이 누군가에게는 '하교길'이 될수도, '오락실 가는길'이 될수도 있다는 거고, 학교를 가야지 마음 먹었다가 학교를 안가면 그 길을 '등교길' 이라고 굳이 부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학교를 안가면 엄마랑 선생님한테 디지게 혼나겠지만, 엄마랑 선생님한테 칭찬받는게 나를 꼭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조금은 (머리로) 알겠다.

 

관심도 없던 강백수가 풀어내는 인생 썰을 계속 듣고 앉았노라니, 살면서 어느 가수의 공연에서 그토록 많이 나의 지나온 삶을 회상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잊었거나, 잊고 싶었거나, 잊지 못했던 나의 인생 장면장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가 지나온 삶이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마땅히 감추어도 좋을 법한 것들을 감추지 않았다. 살면서 좋은 음악을 숱하게 듣고 수많은 감정선들이 건드려졌지만, 이렇게 기억선들을 깊게 건드려지기는 처음이다. 글을 노래로 쓰는구나. '음악과 문학을 동시에 거머쥔 괴물' 맞구나. 이 사람.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이 노래가 더 좋았던 이유는 내 인생의 25퍼센트를 지배했던 비교심을 건드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늘 내가 감성적이고 감상적이라는 것에 대해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식대로 바꾸면 '감성적인 내가 이성적인 너를 어떻게 이겨.'

 

사람이 자기 검열을 가장 철저하게 하게 되는 때가 언제일까? 바로 사랑에 빠졌을때가 아닐까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평소에는 거울도 잘 안보고 앞머리가 인중에 닿건말건 신경도 안쓰던 내가, 외출 때마다 고데기로 머리를 정갈하게 말고 그리지도 않던 아이라인을 그리고 늘 단정한 원피스에 7센티 정도의 힐을 신고 나간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기억속에서는 가끔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상대방이 나의 지나친 감성을 탓했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부터 감정선이 발달한 여성 속성인데다가, 여성 중에서도 유달리 예민하고 여렸다. 겉으로는 짐짓 사내처럼 무심하게 나를 포장했지만, 사실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손가락 유리 찔리듯 아프고 아렸다.

 

(상대방의 시선에서는) 이상한데서 이상하리만큼 상처받고 슬퍼하는 내가 힘들었나보다. 나 역시 이상하리만큼 이상한데서 냉철하고 정확한 그가 미웠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여자친구랑 싸우다가 싸우는 그 시간이 아깝다고 회사로 뛰어가 일을 하는가. 심지어 헤어짐을 앞둔 어떤 지점에서는 이따위 말도 들었다. "일과 사랑 중에, 사랑만 있고 일이 없으면 먹고 살수 없다. 그러나 일이 있고 사랑이 없으면 먹고 살수는 있다."

 

모든 결론은 단순하다. 그 자식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거다. 아무튼 헤어짐을 앞둔 지점에서 들은 저 한마디는 세상 어떤 말보다 서슬퍼런 말이었고, 저 말이 고대로 언젠가 그 자식 가슴에 되돌아 꽂히길 바라고 바랐다. 꼭 같은 사람을 만나 세상의 좋고 아름답고 가슴을 일렁이게하는 따스한 것들은 다 제쳐두고, 그저 머리로 먹고 살기를 바랐다. 무미건조하게 연애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랑하고 무미건조하게 생을 살다가 마감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하던 사람에게 힐난받은 나의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부분을 없애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쿨한 내가 되고 싶었다. 그깟 말 한마디에 그저 시크하게 웃으며 날 때부터 탑재되있지도 않았던 '쿨함'을 계발해뽐내고 싶었다. 쿨함을 계발하려던 나의 노력은 이상한데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데, 일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게 됐다. 적절한 위로대신 드라마에 나오는 식상한 멘트를 날렸다. 길거리에 사람을 치고 가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안했다. 욕을 많이 했다. (아, 이게 결정적으로 싸보이는건데 싸보이는것과 쿨해보이는 것의 차이를 이리도 몰랐다.) 여행 책을 끊었다. 등등등등등등등!

 

△ 나에게 '쿨함'은 개발일까? 계발일까?

 

 

아무튼 '무미건조'한 내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사람은 세월 속에서 깎이고 흘러가면서 무뎌지게 되있는게 그걸 굳이 인생의 가장 말랑말랑한 시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예행연습을 했어야 되나 싶긴 하다. 아무튼 그런 치열한 노력 덕분인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 덕분인지 나는 예전과는 좀 많이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성적이고 감상적이다.

 

케이팝스타를 보면서 울고, 강백수 노래 듣다가도 울컥하고, 심지어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라고 떠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본인과 사귀기만 하면 명품백을 비롯해 온갖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남자가 싸보이고, 그렇지만 변변한 명품백 하나 없는 내가 꾀죄죄 해보이긴 하고, 돈 잘버는 친구 앞에서 괜히 주눅들고, 그렇지만 그래도 사랑과 일 중에 사랑없이 일만 하는 삶을 택하고 싶진 않고.

 

몇년동안 연락 없다가, 얼마전 게임 초대기능으로 본인 회사 게임에 초대한 그 상대방의 카카오톡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게임 절대 안한다. 그리고 너네회사 게임은 더더욱 안한다.

 

 

* 호모 게이머스 같은 시키. 호모나 되라. 게이가 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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