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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엄홍길의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_ 내 영혼을 비빌 자격 그의 글에는 유난히 '비비다'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또한 뒤이어 이어지는 문장의 앞머리에 '사실'이라는 부사를 눈에 띄게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뒤에 또 '사실'을 말하는 사람. 일평생을 얼음산에 비벼온 것도 모자라 활자까지 종이에 비비는 사람.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비비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많은 정의들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재료에 다른 재료를 넣고 섞이도록 버무리다'. 나는 한참동안 그 정의를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비비다'라는 활자를 머릿속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봅니다. 비빔밥도 생각나고, 팥빙수도 생각이 납니다. 사람좋은 그의 웃음을 들여다보며 비비고 비비고 또 비빕니다. '비비다'는 행위의 전제조건은 성질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 더보기
김점선의 <점선뎐>_ 그래, 난 김점선이다 자기전에 을 비롯한 김점선 아줌마 글을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 읽고 잔다. 사실 어느 책을 들어도 그 글이 그 글이다. 똑같은 글이 이 책에도 있고, 저 책에도 있다. 책을 사 읽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책 편하게 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글 한편 써놓고 여기에도 싣고, 저기에도 싣고. 책 제목만 다를뿐 텍스트는 대체적으로 같다. 게다가 그런 책이 한두권도 아니고 대여섯권 되지 않나? 이 여자는 뭐가 그리 대단해서 같은 글을 책으로 또 내고 또 내고 할까. 출판사는 글도 안 읽어보고 막 실어주는 가보다. 글들에서 하나같이 아주, 지독한 자아도취적 냄새가 났다. 그래. 예술가는, 또 작가는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자아도취 할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먹고산다. 자존심으로라도 먹고산.. 더보기
김점선의 <10cm 예술>_ 점과 선이 만나'면' 내가 사람인 것이 고통스럽다. 이런 걸 맨 처음 느낀 것이 열 살쯤의 일이었다. 이가 썩어서 치과엘 다니면서 그렇게 느꼈다. 신경 죽이는 약 바른 솜을 꽉 깨물고 길을 걷고 있었다. 이빨은 커녕 손도 머리카락도 없는 게 헤엄도 잘 치고 날기도 하고 얼마나 신나게 꽥꽥거리며 잘 살고 있는가? 학교도 안 다니고 숙제도 평생 안해도 되고 치사하게 머리털 자르러 이발소 같은 데도 안 다니고, 오리가 부러웠다. 그때 길가에서 오리를 본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오리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러 개의 조그만 뼈를 입속에 가득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오리보다도 훨씬 열등한 기분 나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경 치료를 받으면서, 그 고통 속에서 치과 의자에 파묻혀 있으면서 갑자기 오.. 더보기
김주영의 <멸치>_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자리 새가 경계심을 거두고 둥지 근처로 내려앉을 때를 기다리는 외삼촌 곁에서 반듯이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바람만 살아서 윙윙거리는 세상, 어두운 공간과 밝은 공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세상과 바라볼 수 없는 세상, 그 한적한 풍경 속으로 섞여 든 햇살과 바람과 나뭇잎 같은 모든 사물들, 석관의 밑바닥에 수천 년 동안 고여있던 시간, 내 조촐한 삶의 이력으로 터득할 수 있었던 공간과 터득할 수 없었던 공간까지, 그리고 상상력의 한계 너머까지 모든 불가사의한 공간들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신비한 자력으로 넘실대는 몽환적 분위기를 경험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비어 있어 적막하기만 하였던 가없는 하늘이 어떤 자력의 기운으로 흐물흐물 용해되었다가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듯한 포만감에 .. 더보기
이우일의 <좋은 여행>_ 그와 함께 떠나는 232페이지 사실은 세사람이다. 언뜻 넘기다가 다시 자세히 보니 한 여인이 책장사이에 찌부라져 있었다. 출판사들이여, 그대들을 먹여살리는 작가의 소중한 작품들이다. 한둘도 아니고 정말 이럴래? 대한민국에 이우일스런 캐릭터는 많지않다. 글과 그림이 어느 한쪽 치우침이 없고, 자기감성에 지나치게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그의 최고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 그 속에 익살스러움이 잔뜩 녹아있다는 것. 그러나 깊이 있다는 것이다. 여태 읽은 책 중 '으하하하하' 하고 자지러지게 소리내 웃은 것도 그의 것이--유일하다. 여행기임에도 사진한장 없다는 것이 메리트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훨씬 더 호소력있는 그의 그림이 책을 빼곡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이나 그림이 실린 책을 찍어내는 출판사는 굳이 책 가운데를 꾹 집.. 더보기
20주차_Good to Great_최선을 다하기에 위대할 수 있다 ‘Good’과 ‘Great’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화두를 던지며 시작합니다. 좋은 것이 왜 위대한 것의 적일까요? 여태껏 읽어왔던 몇 권의 책에다 이 책의 논지를 더해 내린 저의 결론은, 좋은 것은 ‘최상의 잠재력의 발휘’를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하는 생각중의 하나가 ‘지옥이란 어떤 모습일까?’ 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형태의 지옥이 인간에게 가장 뜨거운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한 인간이 죽어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게 될 때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모든 능력을 끌어낸, 최상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끔찍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