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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20주차_Good to Great_최선을 다하기에 위대할 수 있다

 

‘Good’과 ‘Great’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화두를 던지며 시작합니다. 좋은 것이 왜 위대한 것의 적일까요? 여태껏 읽어왔던 몇 권의 책에다 이 책의 논지를 더해 내린 저의 결론은, 좋은 것은 ‘최상의 잠재력의 발휘’를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하는 생각중의 하나가 ‘지옥이란 어떤 모습일까?’ 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형태의 지옥이 인간에게 가장 뜨거운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한 인간이 죽어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게 될 때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모든 능력을 끌어낸, 최상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끔찍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그 능력들이 제대로 발휘되기만 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는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럭저럭 삶을 마치고 난 후, 위대한 자신의 모습과 맞부딪혔을 때의 고통은 실로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고, 저 또한 그런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면 실로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되겠지요. 이 책은 좋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기업’이라는 툴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큰 그릇을 가진 리더
저자는, 위대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하나같이 이중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도무지 매치되지 않을 것만 같은 ‘불굴의 의지’와 ‘겸양’이라는 덕목이 한 개인 안에 적절히 융화되어 있지요. 위대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CEO들은 열정, 리더십, 카리스마 이 모든 것을 갖췄으나 ‘겸양’이 부족합니다. 저로써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점 안에 즐비하게 늘어선 CEO에 관한 책들은 성공의 비결로 저마다 열정, 아이디어, 현장경험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고 있었으니까요. 리더의 겸양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빌게이츠의 인터뷰가 기억났습니다. 빌게이츠가 한 말 중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한 마디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입니다. 그때 저는 그의 발언이 당연히 ‘이미지 관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읽게 된 <아웃 라이어>라는 책을 통해 빌 게이츠의 성공에 얽힌 비밀들을 알게 되면서, ‘이 사람은 정말 운이 좋았군. 부럽네.’ 라는 생각 정도 밖에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그가 타고난 재능이나 배경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더해진 겸양이 오늘날의 위치까지 그를 올려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겸양 있는 CEO로 안철수 씨도 떠올릴 수 있었는데요, 조용하고 연약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살아온 열정적인 삶이, 책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단계5의 경영자와 부합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정말로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새기게 되었고, ‘ 큰 그릇’을 가지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위대한 기업들은 으레 위대한 포부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최고의 ○○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이쪽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A, B, C를 영입하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들은 먼저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앉히는 것을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실로 무모하게까지 여겨지는 논리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꺼라니요? 이는 사람에 대한 100%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기업들은 ‘꼭 맞는’ 사람을 위한  ‘꼭 맞는 자리’를 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불사했습니다. 꼭 맞는 사람들은 ‘우리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한다!’ 라고 다그칠 필요 없이, 그들 스스로 연료를 때고, 엔진에 시동을 걸어 그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회사를 데려다 줄 테니까요.


우린 틀림없이 잘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진정한 리더의 자질에서 엿보았던 이중성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기업의 사고패턴 속 에서도 이중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단, 근거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말이죠. 위대한 기업들은 ‘막연한 희망’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언젠간 풀리겠지, 언젠간 잘되겠지.’ 라는 근거 없는 희망은 나이60이 넘어서도 인생한방을 꿈꾸며 로또를 긁는 이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잘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기업이 가감 없이 모든 상황을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독자적인 전략의 구축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꼭 맞는 자리의 꼭 맞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모든 기업들이 사람을 최우선에 놓은 것이지요. 잘할 수 있는 전략을 구축하기 위한 툴로써, 저자는 ‘고슴도치 컨셉에 기반한 세 가지 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고 ② 세계최고가 될 수 있으며 ③ 경제적 수익이 보장된다 는 세 가지 원의 교차부분을 모두 충족시키는 ‘그것’만이 진정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 툴은 개인의 삶에도 훌륭하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세 가지 원에 대한 이해’의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저 개인에 비추어, 세 가지 원의 교차부분을 곰곰 들여다보니 ‘과연 이런 직업이 있기나 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등 떠밀지 않아도 일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고, 열심히 하면 세계최고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수 있다니! 이 세 가지 원 개념과 놀랍도록 일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또 한명이 바로 한비야 씨입니다. 그녀는 최근의 저서에서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라는 소제목으로 제 또래의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일단 자신이 낙타인지 호랑이인지 파악하라. (낙타는 사막에서, 호랑이는 숲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뒤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고 또 물어라. 물귀신같이 늘어져라. (돈에 대한 선택은 존중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동. 서양의 두 저자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두려워 이 시간을 회피해온 저도,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자유는 책임아래 빛난다
위대한 기업의 또 하나 특징은 그들의 기업문화입니다. 그들은 ‘책임에 대한 엄격성’을 강요하지 않고 문화로 만들어, 구성원 모두가 체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규율을 통해서 구성원들의 창조성은 더욱 잘 보장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규율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원의 교차부분을 토대로 실행되었고 여기서 벗어나는 모든 것은 과감히 제거 되었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바로 ‘일관성’과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기업들은 모두 고집스러울 만큼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많은 시간과 땀방울을 들여 일단, ‘이것’이라고 정해지면 남들이 뭐라 하든 가차 없이, 묵묵히 밀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겠지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진정한 자신을 마주봐야 합니다. 세 가지 원의 교차부분을 찾게 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용기 있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달콤한 유혹이 찾아와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지 않으면 과감히 뿌리칠 줄 알아야겠지요. ‘왜 위대해져야하는가?’라는 물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위대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진정한 삶의 부표를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제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