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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여자

 

 

결국 월요병에 최적화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월요일 아침을 피로와 짜증으로 끙끙거리기 위해, 월요일 새벽 세시께나 잠들었다. 이런. 새벽 두시까지 누워서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웹툰을 다보고 잠이 안와 뒤척거리다 한 시간을 그냥 보냈다.

 

어제 나를 새벽까지 잠 못들게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여자 때문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도의 피로 속에서 어떤 여자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었는데, 이게 나름의 환각 상태인지 어쩐건지 아무튼 너무 좋은거다. 와. 나라는 사람은 문학 중에서 에세이류를 가장 많이 읽고 좋아하는 편인데 - 1년에 한 권도 겨우 읽을까말까 한다는 사실이 쑥스럽긴 하지만 - 본인의 진짜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간명한 느낌이 좋아서이다. 현대 문학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소설이나 시를 읽고 나서 덮으면, 내가 무식해서 그렇긴 하겠지만 덮고 나서도 뭔 말인지 당최 모르겠는거다. 어...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지. 그래서 나는 쭉 소설을 한결같이 싫어했던 것 같다. 나의 무식을 인정하기는 더 싫고. 게다가 나의 현실에서도 소설처럼 말도 안되는 행인 1,2,3 이 등장해서 이런 저런 사건을 던져주고 내 복장을 뒤집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시간을 들여서 또 머리 아픈 드라마에 빠지기 싫다는 뿌리깊은 방어기제가 늘 있었다. 내가 드라마를 안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무튼 소설도 싫고, 드라마도 싫고 그나마 문화 생활의 대부분을 음악으로 향유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언어의 결에 대한 동경과 욕망이 늘 있기 때문에 읽지도 않을 시집을 종종 왕창 사서 처박아 두는 것으로 지성인의 면모를 조금 가지고 싶어한다. 이 시집이라는 것도 제목이 맘에 들어서 불쑥 사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읽으면 소설처럼 똑같은 고통 속으로 처박히는 것 같다. 시집이 나를 처박기 전에, 그래서 내가 시집을 처박는다.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문학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닿는 거라지만, 와씨.

 

음. 그리고 내가 향유하는 대부분의 음악과 시의 원작자는 90%가 남자다. 가수나 시인들 중에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자들이 섬세하게 건드리는 어떤 결들보다 남자들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담백하게 건드는 그런 느낌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여자라서, 똑같은 감성의 결을 똑같이 건드리더라도 남자가 하면 더 멋있어 보이는 게 맞다. 그건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기때매 어쩔 수가 없다. 똑같이 피아노 잘 치는 남자, 여자가 내 앞에 있는데 당연히 남자한테 하트를 발사할 수 밖에 없는거니까.

 

그런데 요즘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인생의 90%를 음악을 듣고, 그 음악 중의 90%를 남자 것만 듣는 나에게 나름대로 대변혁. 예전에도 아주 안 산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 빠졌다. 그것도 여자. 게다가 시집도 다시 그러모으고 끌어모이기 시작했는데 여자. 뭔가 드디어 나도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인가! 소설과 시어와 여자를 동시에 이해하는 대변혁의 시대가 나에게도 온 것인가! 꺄흥흥.

 

주말에는 역시 제목이 맘에 꼭 들어서 산 소설책을 엎드려 읽다가 정말 한숨을 쉬며 찬탄을 마지 않았고, 오늘 새벽에는 시 몇 편을 계속 들여다보며 읽다가 회사로 가져와 맨 정신에 읽어보았는데 역시 좋다. 그리고 좀 더 길게 풀어서 쓸데없는 말을 하자면, 스물 세 네 살쯤에 사놓고 좋은지 몰랐던 시들이 이제 진짜로 좋기 시작한다. 그때는 '이해하는 척' 했는데, 그리고 그런 시를 이해하는 척 하는 내 자신을 이해하는 척 하느라 되게 바빴는데, 지금은 진짜로 아주 조금씩 이해가 된다. 화선지에 물 번지는 그런 느낌으로 조금씩 내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런 시를 이해하는 내 자신도 점차 이해할 수 있는 중이다.

 

 

* 나 스무살때 당신들이 좋다고 나에게 권했던 그런 시들, 음악들. 이제 진짜 조금씩 들리고 맛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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