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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후기를 구걸합니다

아무래도 명색은 '마케팅 담당자'이다 보니 독자들의 댓글 하나, 후기 하나가 참 고맙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책은 네이버를 눈씻고 뒤져도 후기가 잘 없기 때문에 '1. 나는 정말 마케팅이랑 안 맞는 것 같아 2. 우리 회사 책은 정말 더럽게 재미없는 것 같아' 이 두가지 굵직한 생각이 가슴에 와박힌다. -박힌지 오래된 것 같다- 물론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2번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편이다.

 

 

 

소문 좀 내주세요

나 이거 입는다고, 나 이거 읽는다고, 나 이거 먹는다고, 나 이거 바른다고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가족, 연인,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팔때도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기 보다는 얼굴과 모니터가 마주하는 것이 쉽고, 빠르고, 싸다. (하긴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사람들 간에도 얼굴 볼 시간이 없는데 말이다.) 얼굴과 모니터가 마주보니, 세 치혀에 비단구르듯 하는 장사치의 꼬임에도 넘어갈리 없고 어수룩하게 보여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적다.

 

사실 놀랍지 않은가! 누가 파는지도 모르고,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물건-사람] 의 공식이[? -물건- ?]으로 변했다. 누가 사는지, 누가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 물건에 '얼굴'의 기능이 필요해졌다. 바쁘고 귀찮아서 얼굴의 기능이 배제된 것일뿐, 우리가 얼굴을 입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마주볼 누군가의 얼굴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데 있어 '얼굴'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목소리. 키보드로 두드리는 누군가의 후기이다.

 

* 24살 흔녀인데염,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 자취 5년차 대학생입니다. 이 밥솥 3년째 쓰고 있는데 진짜 좋고 짱이예여.

* 보정 하나도 안한 피부입니다. 진짜 대박이져.

* 넘 맛있어서 두 박스 추가로 주문해여. 서비스 많이 주세여.

 

얼마나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으면, 후기 샘플 떠올리기가 이토록 쉬운가. 인터넷이라는 가히 우주적인 공간안에서 목소리는 충분히 조작 가능하고, 1초만에 세계 끝까지 가 닿을수 있다. 전 세계의 목소리들이 이 물건이 좋고, 이 물건이 싸고, 이 물건이 맛있고, 이 물건이 예쁘다고 오늘도 소리높여 푸쳐핸졉!

 

 

 

물건으로 일기를 쓰는 나 같은 사람은 사실

 

 

개인은 하루에 몇 가지의 물건을 사용할까? 한 인간을 둘러싼 물건의 사용과 소용은 사실은 그 사람의 전 세계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아침에 어떤 핸드폰의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출근을 하는지. 통조림을 사먹는지 아닌지, 박스째 라면을 사두는 편인지, 견과류를 자주 먹는지 아닌지...

 

은밀하게 세상에서 나를 적당히 드러내고 적당히 감추고 싶은, 그리고 물건으로 본격 일기를 쓰는 나같은-그러니까 사용하는 물건이 취향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사람은 그래서 후기를 안 쓴다. 후기를 안 쓰면서도 후기 써달라는 이벤트에 응모는 해놨다. (당첨되면 후기 쓸란다!) 책 리뷰를 안 써주는 독자들에 대한 야릇한 원망이 일다가도 '그렇다면 나는?' 이라는 질문에 '나는 책을 잘 안 읽으니까!'라는 대답으로 피해버리기엔, 책만큼 개인의 가치관을 쉽게 들키는 매개체가 없으니 쓰기 싫다는 속마음이 떡 버티고 있다.

 

모든 개인의 은밀한 세계는 지켜져야 하기에, 책 리뷰를 써준다고 하고 책을 가져가놓고 감감 무소식인 야속한 독자들을 이해하련다. 이해는 하지만 안 쓸꺼면 가져가질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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