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머리

디지털 시대의 폭력 : 어딘가에 있는 것과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 세이클럽 홈피 서비스가 2014년 2월 3일자로 종료되었다. 안녕, 나의 사랑. 

 

 

 

간편함을 사랑한거지, 일회성을 사랑한게 아닌데 

 

 "괜찮아?"

 

유독 기록-'살아가는 생에 대한 흔적'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해본다-에 집착하는 나의 성미를 아는 선배가 묻는다. 데이터를 다 백업시키지 못해 조금은 헛헛한 기분으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하루.

 

싸이월드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이클럽. 내 안에 무언가가 늘 꽉 차 있었고, 그걸 어딘가에 쏟아내고 털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던 유년. 핻동이 조용하고 말수도 적은 편이었고, 필요한 말이나 하고 싶은 말보다는 늘 쓸데없는 농담이나 과장된 상상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었다. 내 속에 있는 어떤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걸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꽤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진짜 이야기는 늘 자판에서 이루어졌는데, 지금 읽어보면 읽는 도중 모니터를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에 종종 사로잡힐 정도의 대단찮은, 그래서 그만큼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학창시절, 꽤 열심하고 성실한 모범생이었는데 별다른 탈출구가 없었던 터라 집에 와서 늘 전축을 틀어놓고, 새벽 3시까지 잠 안자고 타자로봇과 타자 대결을 하거나 글을 쓰곤 했다. 타닥타닥. 컴퓨터가 거실에 있어서 어두컴컴한 거실에 모니터 불빛만 환했고, "지금 몇 시냐!" 잠에 잠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재빨리 모니터를 껐다. 컴컴한 거실과 모니터 불빛, 숨죽이고 누르는 자판, 뭔가를 빼곡히 써넣은 모니터... 그것이 내 유년의 전부다.

 

 

열아홉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대학에 가니 트렌트 세터 격인 몇몇 아이들이 '싸이월드' 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싸이월드 이용법을 잘 몰라 아이디만 겨우 만들어두고, 세이클럽을 주구장창 이용하고 있었는데 기록을 보면 거의 대학 1학기때까지 열심히 세이클럽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업을 해두지 않아서 간직은 못했지만, 대학시절 첫 엠티와 동기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대한 사진과 글들이 대부분이다. 꽤 오동통한 얼굴로 머리에 꽃을꽂고 개나리랑도 찍고, 벛꽃이랑도 찍기를 좋아했던 십년 전의 내가 남긴 글이 있다.

 

"인생에 딱 백번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지금 나는 인생의 열 아홉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는거야.

이제 80번 밖에 안 남은거야."

 

"사진. 참 신기하지.

그날의 향이 나고 소리가 들려."

 

등등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그리고 조금은 손가락이 간지럽지만 그래도 열아홉의 풋풋한 소녀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예쁘기도 하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흘린 수많은 부스러기들은

 

세이클럽 홈피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것은 사실 한달 전부터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어마어마한 양을 언제 정리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고, 엄무시간에 짬짬이 저장을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좀 벅찼고, 집에 가서 하기에도 귀찮고... 마침 달력을 보니 설날 연휴가 넉넉하게 끼어있어서 그때 하겠다는 심산이 컸던 듯 하다. 마침 또 2월 3일 서비스 종료이니, 2월이 되고 나서도 피일차일 미루다가 엊저녁에는 결국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갔으니 오늘의 술 한잔에 과거의 모든 추억을 팔아넘기니 셈이다. (그나마 100편 이상 써둔 글은 다 저장해두었다는 것이 내심 위로가 됐을까. 내가 의외로 사진보다 글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애시당초 다 접고 술을 마시러 나가면서도 좀 놀랐다.)

 

연휴기간동안 정리를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집의 컴퓨터 상태가 너무 열악하고 몇 시간을 끙끙거리며 노트북도 켜보고 넷북도 켜보고 별 짓을 다해봤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수많은 삶의 부스러기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노트북에도 있고, 넷북에도 있고, 잘 돌아가지 않는 컴퓨터의 D드라이브에도 있고... 이 많은 부스러기들을 어떻게 한담!

 

우리 삶은 더 많은 흔적을 남기라고 은근히 강요한다. 흔적이 예전에는 삶에 대한 기록, 삶에 대한 추억이었다면 통신기기가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에는 관계를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진기인지 전화기인지 분간이 안가는 핸드폰, 더욱 가벼운 카메라, 캡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각종 사진 꾸미기 어플... 직접적인 알맹이의 대면보다는, 알맹이가 남긴 흔적과 소통하는 것이 편하고 쉽다. 사진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나를 적당히 알릴 수 있고 너를 적당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부스러기 흘리기에 열광하는 것일수도 있다. 더 많은 부스러기는 더 많은 비둘기를 불러모으고 나는 비둘기가 들끓는 동안은 외롭지 않아서 안심할 수 있다.

 

하늘의 별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도 모르고, 한데 모으기는 그 무게가 버거운 쩜 쩜 쩜 내 삶의 부스러기들. 기록이 목적인지, 관계가 목적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습관인지 어쩐건지 어쨌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한 덩어리가 훅 하고 사라져버렸다. 그 덩어리에 굳이 라벨을 붙여본다면 '순수의 시대' 쯤 되지 않을까. 피식.

 

아무튼 나는 또 이렇게 열심히 여기저기 부스러기를 흘리는데 골몰하고 있는데, 나중에 또 일순간 훅 하고 사라져 내 심장에 어택을 가하는 날이면 난 정말 슬프고 외로울 것만 같다. 나는 엄연히 피와 살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인간인데, 왜 내가 살아온 모든 족적들은 자꾸만 디지털이 되어 결국에는 사라져버리는겐가.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과 마음, 혹은 마음과 몸  (0) 2014.02.11
노래 부르는  (0) 2014.02.08
불안의 마지노선  (4) 2014.01.28
아프니까 청승이다  (0) 2014.01.25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2) 2014.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