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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승이다

 

 

 

▷ 한때 대학생, 젊은 사회인들 사이에 큰 히트를 친 <아프니까 청춘이다>. 다들 아프니까 다들 한번씩은 읽어봤을꺼고, 읽고나서도 여전히 아플테지만 후속작을 또 낸다고 하면 <아프니까 청승이다> 어떨런지요.

 

 

몸살감기에 걸렸다. 정확히는 몸살감기 + 여자들의 ○○통 콤보인데, 최고의 찹쌀짝꿍이라 할 수 있을정도 그 고통이 상상초월이다. 감기균 제공자인 회사 선배 때문에 감기에 걸렸는데, 나만 걸린 것이 아니라 온 회사 사람들이 (그래봤자 얼마 되지 않지만) 콜록콜록 거릴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끙끙 앓다가 불현듯 홍대 '폴앤폴리나' 빵을 먹으면 이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고 광명의 새 시대가 열릴 것 같아서, 집에 가서 바로 누워도 시원찮을 몸상태에 선배를 앞세워 폴앤폴리나로 향했다. 그러나 마감 10분전에 도착해 쇼케이스의 모든 빵은 거의 소멸상태였고, 커다란 빵덩이와 (콤파뉴?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스콘 몇 덩이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에서 조금 갈등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데, 독수리가 생쥐 낚아채듯 나에게 1초의 여유도 주지않고 바로 "콤퍄뉴 하나 주세요!" 라며 잽싸게 빵덩이를 사냥해가는 여자 덕분에 빵을 못사고 나왔다. 스콘이 먹고 싶진 않았다. 아픈 소비자에게 '뭘 먹을지' 갈등의 즐거움조차 빼앗아가는 멀쩡한 소비자야! 그나마 선택도 두가지 밖에 없었는데! 에라이. 큰 빵 혼자 다먹고 살이나 10키로 쪄라. 퉤퉤.

 

폴앤폴리나를 시무룩하게 나와 빵을 못샀다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선배가 원래 착한건지 나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뭐라고 먹는게 나을 것 같아서 쌀국수. 그러나 몇 젓가락 대니까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와서 더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선배사마.

 

엊저녁은 또 마침 이스라엘에서 2주간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귀국하는 날이기도 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온몸이 녹아내릴 듯이 으실거려 자정쯤에 다시 한 번 전화를 넣으려했지만 열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어찌나 몸이 덜덜덜 떨리던지. 선배가 준 약을 먹고 비타민도 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정말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온몸에 한기가 가득하다. 자리에 누워서 덜덜 떨다가 내 몸의 진동이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눈물이 막 흘러내렸다. 여배우처럼 이쁘게 울면 좋겠지만, 대충 상상되는 표정이 있다. 아마 누워서 이렇게 울고 있었을거다.

 

 

조경규 / 오무라이스잼잼

 

 

아프니까 청승이다. 아파서 서러워 청승떨며 이불속에 온몸을 파묻고 울었다기 보다는, 바쁜 척 하느라 그동안 튀어나올까 꼭꼭 눌러놓았던 누군가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마구 뒤엉켜 분출된 것 같다. 미안함이 제일 컸고... 아프니까 청승맞구나.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출근 준비 시각이다. 오늘은 출근을 안해도 된다. 전국에 눈소식 아닌 비소식이 있다니, 봄이 또 이렇게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