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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마지노선

 

△ 가끔 나는, 내가 타인들의 불안을 잠식시키는 더 큰 불안요소를 끌어안고 있나 생각해보게 된다.

나를 보면서 자기 삶에 안도하는 타인들.

 

 

 

출판사 직원조차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출판사에 다닌다는 것

 

 

"출판사에 다녀요." 내 대답에 대한 대답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어렵지 않아요? 박봉에..."

"와, 책 좋아하시나봐요?"

 

젊음과 직업을 무기로 장착한 뒤 심호흡 훅 하고 - 아직까지 맞선 시장에 나를 팔아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곳에 나간들 돌아오는 대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제자 한겨레 신문에 우리 회사가 나왔다. 전 직원이 함께 찍힌 사진도 실렸다. 나름 처음 찍어보는 기사 사진이라, 플래시 세례에 눈뽕 맞아가서 눈 부릅뜨고 찍은 사진이다. 어색하고 어눌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단촐한 네명에 한 사람 빠진 자리가 조금 섭섭해뵈기도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에 신문기사를 본 아버지가 전화가 왔다.

 

"어이구, 우리딸! 신문에도 나오고, 장하다!"

"아..어어. 그렇죠 뭐. 하하하!"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어디가고?"

 

잠시 1초 침묵. 전 직원은 네 명이다. 한 회사의 아주 작은 부서보다도 더 적은 인원이다. 내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어떤 책을 내는지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으셨고, 딸내미 서울가서 좋은 회사 다니면서 잘 있겠지... 엄마 몰래 가끔 용돈 부치고, 아주 크게 용기낸 "사랑한다"는 어색한 말이 표현의 전부였던 아버지의 꽤 적극적인 궁금함이다.

 

"아...사람이 좀 나가서..."

"사람이 많이 나갔나? 왜 나갔는데?"

"아...뭐 힘들어서 그렇지 뭐."

 

수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아버지의 야릇한 실망감에 머리만 벅벅 긁다가 설에 뵙자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래 총 인원인 다섯 명이 있다한들, 사정이야 크게 달라졌겠는가.

 

 

 

나는 그냥

 

나는 그냥 취직이 절박했을 뿐이야. 그리고 취향을 따져 물을수도 없는 절박함 가운데, 운이 좋게 내 취향의 취직을 할 수 있었을 뿐이고. 책을 미친듯이 좋아해서도 아니고, 출판에 큰 뜻이 있어서도 아니고,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의 주인공들처럼 나만의 어떤 것을 위해서 그럴싸한 것들을 포기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나는 여전히 그럴싸한 것들에 더 손이 가고 마음이 간단 말이지.

 

나는 그냥, 그냥, 그냥인데. 왜 다들 나의 그냥에 왜, 왜, 왜를 붙일까.

 

왜 출판사에 갔어요?

돈은 얼마나 모았어요?

결혼할 시기가 다 되어가는데 불안하지 않아요?

언제까지 다닐꺼예요?

적당히 다니다가 몸값 올려서 이직할꺼죠?

 

이런 질문들이 짜증나고, 가끔 서러운 이유는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 그냥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잠깐의 침묵 속에 하룻밤을 꼬박넘겨 이렇게 휘청대는 나약한 그런 사람이라고. 큰 뜻이 있어서 작은 회사에 다니는 것 아닙니다. 일단은 내가 좋아서,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서 다닙니다. 그렇지만 책장에 늘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와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를 나란히 꽂아두고, 누군가 묻기만 하면 울 태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묻지 말아줘요. 당분간은.

 

 

 

나는 그래도

 

직책만 번듯한 '마케팅'이지, 하루종일 잡무만 쳐내다가 볼 일 다보겠다 싶다. 이거하고 저거하고 요거하고, 돌아서면 또 이거하고 저거하고 요거하고... 마케팅 할 시간도 없는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있겠는가. 내가 몸 담고 있는 공간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감이 물밀듯이 몰려오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어렴풋하게 안다. 회사에서 독자들에게 보낸 메일에, 나도 직원 이전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힘을 얻고 다시금 용기를 낸다. 작은 힘으로 그래도 많은 것들을 꾸려가면서,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를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