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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떡국 : 자취생 야매 요리

 

 

 

사진으로 보기엔 아주 소담스러워 보입니다만, 순도 100%의 귀차니즘이 빚어낸 나름의 발명요리라고 해두겠습니다.

 

 

넌 부지런했으면 진즉에 뚱뚱했을거야

 

부지런하면 뚱뚱하다니? 나의 어떤 부분을 잘 아는 친구들이 자주하는 말입니다. 걷는 것 싫어하고, 1층에서 2층까지의 이동이라도 왠만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 안간힘을 쓰며, 식당에서도 물 가지러 갈바에는 그냥 마른 목에 밥을 먹습니다. 아주 그냥 게으른 인간인거죠. 그나마 밖에서는 사회가 용인할 정도의 게으름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편인데, 집에만 오면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모든 게으름이 폭발합니다. 펑!

 

집이란 공간은 참 묘합니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살때는 한번씩 모친이 내 방에 들이닥쳐서 - 너무 게으르니까 청소하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예 어질르지를 않는다는. 항상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 쌓여있는 빨래를 가지고 잔소리를 하셨는데 - 너무나 정돈된 방에 빨래더미만 산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눈에 참 쉽게 띱니다.- 혼자 살기 시작하니 잔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집에 있으면 너무나 늘어지는 스타일이어서 항상 집에서는 뭔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습니다. 수능 준비, 시험 공부는 물론 - 사실 시험공부를 집에서 하겠다며 책을 집으로 가져가는 자체가 공부를 안하겠다는 또다른 표현인거죠.- 그 밖에 뭘 집에서 더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에서는 뭔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네요. 티비 보는 것도 귀찮아서 안 볼 정도니.

 

뚱뚱한 사람들은 일단 자주, 많이 먹겠지요. 그러려면 일단 뭔가를 사다 쟁여 놓아야 하고, 없다면 몸을 일으켜 사러가는 정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 짓을 어떻게 하는거죠. 저는 그냥 굶어요. ㅠ_ㅠ

 

보통 주말에는 밖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편인데 이렇게 오랜만에 집에서 보내는 휴일에는 배는 고프지만 차마 쌀을 씻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 귀찮으니까.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싶지만, 물을 끓이고 곁에 붙어서서 휘젓고 기다리는 모든 과정이 귀찮아요. 오죽하면 짜파게티를 생으로 뿌셔먹었겠습니까. (더럽게 맛없으니 하지 마시길. 짜장가루에서 탄약의 맛이 남.) 그럼 컵라면은 어떠하냐. 게으른 와중에 몸 챙기는 스타일이라 일회용기에 든 식품은 거의 안먹습니다. 전자렌지도 사용해본적 손에 꼽을 정도이구요.

 

먹을 것 넘쳐나는 맛거리에 산다고 늘 자랑하면서, 정말 문밖만 나가면 만두집에 김밥집에 내가 좋아하는 오니기리 집에 튀김집에 빵집에... 그러나 몸을 일으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거죠. "그럼 그냥 굶어라!"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조리과정이 없거나 최소화 된 '자연식 인스턴트'를 선호합니다. 떡국 떡이 그 대표적인 예. 혼자 중국에서도 오래 살고, 대전에서도 살고, 서울에서도 사는데... 엄마가 음식을 해서 보내주신 적은 서울이 처음인 것 같아요. 어느날 밤에 튀김을 사러 가면서 "요즘 자꾸 배가고파!" 한 소리 했더니, 갑자기 그 다음날 은혜로운 음식들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더라구요. 소고기 장조림에 깻잎 무침에 연근조림에... 각종 밑반찬들이 그득하게 왔는데, 중요한 사실은 너무 게을러서 밥 해먹기를 피일차일 미루다가 그 모든 반찬들에 곰팡이가 피어 썩혀 버렸다는 사실. 엄마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은혜로운 식량 박스를 보내주셨는데, 밥을 해 먹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딱 한번 했었나. 반찬 다 버렸습니다. 허허.

 

 

냉장고 크기만한 냉동고가 필요할지도

 

자취를 하면서 이렇게 음식을 받아본 적이 처음이니, 이 음식들을 장기보관하는 방법이 있는줄도 몰랐네요. 이렇게 빨리 상해버리는지도 몰랐고. 소고기 장조림을 그대로 다 버리고, 다음번에 또 소고기 장조림을 받았는데... 또 버리기 죄책감이 들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소분해서 냉동고에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국 먹는 방법과 마찬가지구나. 귀차니즘을 이겨버린 미안함 때문에 그날 바로 장조림을 소분해서 냉동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여름에 받았는데 이걸 아직까지 가지고 있으니...장조림을 얼려둔것까진 좋은데, 녹여 먹는게 귀찮은거죠. 정말로.

김치도 함께 받았었는데 한번도 안건드리고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있습니다. 어찌 이럴수가 있지? 김치는 영원할 줄알았는데. 쩝.

 

아무튼 조리시간 5분정도의 자취생표 소고기 떡국 시작합니다. 요리 개발 배경에 대한 썰이 길었네요. 그냥 난 겁나게 게으르다는 것 뿐.

 

♧ 재료 : 엄마가 여름에 보내줬는데 아직까지 안먹고 처박아둔 소고기 장조림 적당량. 역시 엄마가 여름에 보내줬는데 아직까지 안먹고 처박아둔 떡국떡 먹을만큼. 천일염 조금.

 

♧ 조리과정 : 이랄게 있나.

 

1. 물을 끓입니다. 생수 따기가 귀찮아서 굶을까 생각했는데, 계속 버티다가 아사 직전의 상태에서 땄습니다.

2. 끓는 물에 떡국떡을 넣어줍니다. 단언컨데 떡국떡은 최고의 인스턴트 식품입니다. 조상님들 만세.

3. 구석기 시대의 소고기 장조림을 넣어줍니다.

4. 적당히 익으면 간장 또는 천일염으로 살짝 간을 합니다. 두가지 방법 모두 해봤는데 간장을 넣으면 국물 색이 탁하고 맛이 느끼해져요. 천일염 추천합니다. 게으르지만 요리를 참 좋아하는 여자랍니다. 

 

 

 

물 한번 끓이는데 무슨 사단이 나는거냐. 내솥에서 한마리 독수리가 탄생하려 하는 듯.

(냄비 씻기 귀찮아서 밥솥 내솥을 가스렌지에 턱. 뭐 별일이야 있을라고요.)

 

미래의 남편님, 제가 이렇게 하염없이 게으르지만 한편으론 요리를 참 좋아하고 잘하는 여자랍니다.

이게 바로 반전매력! 아님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