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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있게 살려다 '소심'해지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후에 학과에서 급히 전화가 왔다

이유인즉슨, 인문대에 취업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힘들게 우리과로 빼낸것이라며
네가 이 조건에 부합하는 것 같으니 생각있으면 얼른 지원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꽤 괜찮은 모 증권기업의 자리였는데 마음을 써주신 학과측의 배려도 고맙고, '이 시국에 배때지가 불러 터졌구나' 라는 비난을 면하기도 힘들듯하여 '저는 생각없습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전할까 요리조리 생각하다가 어렵게 수화기를 들었는데 때마침 통화중이라 잘됐다 싶어 그길로 미련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실 미련이 없다는건 거짓말이다)


이럴때 삶의 '목표'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맹추같은 나를 콩 하고 쥐어박고싶은 심정이다.
목표가 있으면 어떤 꿀같은 속삭임이 나를 꾀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설사 조금 흔들린다고 해도 후회없이 내 갈길을 갈 수 있을텐데.

나는 백번을 죽었다깨어나도 '증권형 인간'은 될수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아는터라 1분도 생각하지 않고 내려놓았지만, 과연 나의 이 '오만한'태도가 옳은것인지, 정말 배때지가 불러터진것은 아닌지 괜히 주변사람들을 들쑤시며 자기변명을 늘어놓았다

취업이라. 
주변에서는 3학년,4학년때부터 아니다, 요즘은 1학년때부터 취업준비를 한다고 난리지만 나는 왜이리 무덤덤할꼬. 결코 내가 잘나서 마음먹으면 언제든 get a job 할수있는것도 아니요, 집안이 부유하여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지낼수 있는것도 아니다. (지금 이시각에도 우리 아부지께서는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계실런지.)




취업이라는 참으로 현실적인 두글자와, 뜻하지 않게 처음 맞닥뜨린 나는 나름의 쇼크를 먹었나보다
그리고 곰곰 생각하다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의 기회와 남의 기회를 앗지 말자'

그렇다. 정말로 그 일이 너무 좋아 증권회사에 가고싶어 몸부림 치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내가 증권회사에 간다한들 그 사람만큼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일할수 있겠는가. 아침마다 죽을상을 하며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염불이나 외고 있겠지. 엄연히 남의 기회를 뺏는 일이다. 또한 이 넓은 세상에 내가 즐겁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는가. 자기성찰없이 그저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은 나의 기회를 뺏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직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이상향을 가지는 일은 경계하려고 한다.)

오늘 예고없는 취업알선을 통해 나는 또 하나의 공부를 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 자고 일어났더니 취업때문에 근 1년간 끙끙 고생하던 녀석이 좋은곳에 붙었단다. '언니가 취업하면 악어빽 사주마!' 하고 호언장담하던 그녀였는데 악어빽 하나 기대해도 될런지. 축하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