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머리

모습

 

 

 

누군가와 알고 지낸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흔히들 우리는 '누군가를 잘 안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나에게 익숙한' 그 모습만 더욱 익숙해질뿐, 상대방이 나에게 드러내지 않는-혹은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은 끝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뭘 몰라. 끝끝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맞을 것이다. 몇 억년동안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지만, 지구에선 한번도 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지구 입장에서도, 달 입장에서도 어쩌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나와 약 7년정도를, 그러니까 나의 20대를 드문드문 함께 했던 어떤 이를 오랜만에 결혼식장에서 보았다.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에 힐을 신은 다소곳한 내 모습이 다소 충격이었는지, 일주일 내내 전화가 와서는 "너한테 이런 매력이 있는지 몰랐어." 를 연발하는 것이다. - 물론 그런 떡밥은 물지않습니다- 편한 옷차림을 즐기긴 하지만, 그래도 7년동안 종종 치마도 입고 힐 신고 여성스럽게 꾸민 적도 많은데, 얘는 어쩜 내 이런 모습을 한번도 못봤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내가 그 이에게 나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어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까 둘이 공통으로 아는 어떤 이의 결혼식이 아니라면, 얘는 나의 다른 모습을 한번도 못보고 그냥 지나가는거다.

 

가족들을 생각해도 그렇다. 나의 탄생부터 유년기, 청년기를 거치기까지 어느 누구보다 가장 많이 살을 부비고 사랑하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다독이며 산 식구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가정에서의 모습만 알고 있다. 가정에서의 모습을 토대로 밖에 나가면 어떨것이다, 하고 으레 짐작할 뿐. 나의 아버지가 어떤 이들과 일을 하며 일을 할때는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또 밖에서 어떤 이들과 어울리며, 일을 할때는 어떤 모습인지, 강연을 할 때는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른다. 말 없는 나의 동생은 또 밖에서 어떤 이들과 어울리고, 어떤 여자애를 만나고 그 여자애에게는 어떤 남자애인지 도무지 모른다. 모르겠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나의 한 쪽면만 한없이 보여주면서 몇 억년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한 쪽면만 한없이 좋아할 수 있다. 내가 보는 너의 모습. 네가 보는 나의 모습. 우리는 서로의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가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너머의 세계가 너무나 궁금하다. 너는 어떤 세계를 품고 있는 인간이냐.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가 지는 시각  (0) 2013.11.01
쫠깃쫠깃  (0) 2013.10.18
걔네는 진짜 오늘을 사는거야  (0) 2013.09.11
나는?  (0) 2013.09.09
감정 대 폭주  (0) 201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