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게들/다른동네

영등포 떡볶이 : 20년 전통이 뭐 어떻다고?

 영등포에서 친구와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니 왠지 심심. 떡볶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도 마침 떡볶이 생각을 했단다. (아무래도 컵케이크를 폭풍속도로 흡입했던 탓이지 싶다.)

 

'영등포 떡볶이 맛집'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쭈욱쭈욱 뜨는 글들 가운데, '20년 넘게 장사하셨는데 진짜 맛있다, 여기 만한 떡볶이가 없다'는 글 한줄을 보고 찾아가기로 결정! 위치 정보도 정확하지 않고, 사진도 없고, 그냥 '영등포 로터리에서 파크랜드와 다이소 사이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정보의 전부.

 

그러나 뭔가 '20년 전통'이라는 말에 끌려 무작정 찾아가기로 했다. 갑자기 소나기는 오지, 머리에 옷 덮어쓰고 40분쯤 걸었나 싶었는데 왠걸, 영등포 로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국정원 소속이 아닐까 의심되는 친구의 추적에 의하면, 영등포 로터리 쪽이 아닌 타임 스퀘어 쪽에 파크랜드와 다이소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을 거란다. 영등포에 있는 다이소를 몇 군데 집어서 로드뷰로 찾아보니, 파크랜드를 끼고 있는 다이소를 발견한 것. 너 정말 무섭구나. 그렇게까지 떡볶이를 먹고 싶은거니?

 

아무튼 우리가 40분을 걸어왔던 그 길의 반대방향으로 부지런히 올라가서 또 한참을 걸어, 드디어 문제의 그 떡볶이 집에 도착했다. 참 나. 골목 안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다가 밖에서 척 보기에는 그냥 불켜진 노점 정도로 보여서,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기어코 또 이 집 같다며 나를 이끄는 너를 따라 들어가니 정말로 떡볶이 집이잖아, 아 글쎄. 글줄 하나에 의지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너에게 정말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어.

 

자리에 앉자 식어버린 기대가 다시금 슬금슬금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떡볶이가 20년 전통의 그 떡볶이라고? 손님들이 먹고 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플라스틱 접시 몇 개를 옆으로 치우고, 떡볶이 2인분과 오뎅을 주문! 두근두근. 아. 그는 그냥 떡볶이였습니다. 그냥 만든지 조금 오래된, 그저 그런 떡볶이였다. 그리고 뭔가 20년 전통의 할머니 손맛과 인심을 기대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너무 박했다. 말라빠진 떡볶이를 개수까지 꼼꼼 세어주시다니. - 우리가 찾아간게 밤 열시가 넘었으니, 그때쯤이면 그냥 다 주셔도 됐을텐데 - 물에 퉁퉁 불어어 맛도 없는데 밖의 가격과 똑같은 오뎅은 어떻고. 대 실망을 하고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콩코드 효과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콩코드 비행기에 얽힌 썰인데, 썰은 각자 찾아서 읽어보시고 '돈이나 노력, 시간 등이 일단 투입되면 그것을 지속하려는 강한 성향'을 뜻한다. 이 저급한(!) 떡볶이를 먹으려고 도보 왕복 한시간 이상은 족히 투자했단 말인가. 나는 분개하여 '정말 맛있는 떡볶이'를 다시 먹겠다고 선언. 영등포 길가에 늘어져있는 포차 한 군데에 앉았다. 에라 몰라. 콩코드 효과든 떡볶이 효과든, 난 먹고 만다.

 

다행히 포차의 음식들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오뎅도, 순대도, 아주머니 인심도! 비로소 나의 격분한 감정이 진정이 되면서 부른 배를 두드린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 앞으로 영등포 오면 이 집만 올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