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아호.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프로가 되려면 1만 시간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이론이 있다. 내 인생을 곰곰 되돌아보니, 정말로 음악은 1만시간 정도 들었지 싶은거다. 그럼 왜 난 뭔가가 안됐지? 슈스케 나가서 멋있게 기타줄을 휘갈기진 못하더라도, 하물며 피아노 한 두곡은 악보없이 멋드러지게 연주하고 싶은데.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가 아! 난 음악'듣기'를 1만 시간 동안 한거구나. 그럼 나도 듣는 프로가 된 건가? 나도 모르게?
음악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정도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내 인생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감을 참 크게도 느낀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손가락 몇에 꼽을 수 있는 소중함 인 듯 하다. '모임 중독녀' - 옆 회사 선배가 붙여준 별명- 를 좀 더 근사하게 내 식대로 '페스티벌 레이디' 라고 풀어놓고는, 어제도 음악에 흠뻑 젖어있었으면서 오늘도 아침부터 음악을 찾으러 떠날 생각에 분주하다. 오늘은 홍대에서 오후 5시에 여러 아티스트들의 쨈 공연이 있고, 또 며칠전부터 가려고 손 꼽았던 파주북소리 인디 페스티벌이 있다. 내가 끔찍하게 아끼고 좋아하는 그녀들의 공연이기 때문에 Must GO ! 를 외치지만, 잼 공연도 짐짓 끌리고 하늘에는 정말로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무거운 구름이 가득하다. 그래도 조금 망설이다 결국 고 !
파주가는 버스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나요. 출장갈 땐 늘 장거리 이동에 지친 몸을 불편한 의자에 파묻고 헤드셋을 쓰고 눈을 꾹 감아버리지만, 오늘은 헤드셋 없이도 가볍다. 평소엔 한적하다못해 삭막하기까지한 이 동네에 차들이 빽빽하고 - 야 지금 누가 라면먹냐. 습한 공기를 타고 스며드는 라면 냄새라니. 몹시 자극적이다! - 알록달록한 표지판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몇 시간전까지 내린 비 때문에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와 풀 냄새, 미치게 좋다. 이르게 도착해 점심을 뚝딱 먹고 야외 공연 무대를 찾아 좋은 자리를 잡고, 조금 기다리니 공연 시작. 습하고 깊은 숲속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목소리가 축축한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고, 나는 그만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눈 앞에 숲이 가득하다. 오늘은 드디어 반도네온 여신이라는 고상지 씨도 볼 수 있었는데, 말할 때는 허당끼가 제법 귀엽지만 반도네온 연주할 때는 그야말로 불꽃같은 매력이 느껴졌다. 최고은 씨도 여기 합세해 탱고에 우아한 목소리를 입혔는데, 역시 눈을 감고 말았다. 이번에는 사막이다. 아주아주 뜨겁고 황홀한 사막. 그리고 귀여운 두 여인의 등장. 너무 좋아서 '으어어어'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언니들 저 와쪄욤!!
동글동글 탱탱한 실로폰 음과, 두 여인의 예쁘고 향긋한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역시 옥달은 씨디보다 라이브여. 그렇게 습기와 풀과 음악에 잔뜩 취하고 나니, 그동안 지치고 상처입었던 나의 몸과 마음은 페르시아 왕자가 벌컥벌컥 요술 약을 마신 것 처럼, 벌컥벌컥 파워업!
* 나는 사람들한테 안 기대는데 - 혹은 기대면서도 짐짓 안 기대노라고 뻐팅기고 있는데- 누군가 나한테 기댄다 싶으면 난 진짜 미칠 지경인거다. 난 안 그러는데 넌 왜 그래? 이런 심보인거지. 난 기대고 싶어도 억지로 꾹 참고 있는데, 넌 왜 안 참고 기대는건데?
꼭 챙겨주고 싶은 친구의 생일이 하필 외할아버지 팔순과 겹치는데다가, 회사 행사까지 있다. (잘 안되지만)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 먼저. 이건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회사 행사를 뺀다. 두 사람의 생일이 나에게 무척 소중하기 때문에. 친구 생일을 챙기자니 외할아버지의 팔십 인생이 그려지면서, 그의 얼굴에 그려진 주름살의 일부분을 족히 감당했을 나의 유년이 떠오르고 그 자리를 자리비움하기가 그야말로 겁나! 죄송스러운거다. 정말 겁나는거다. 친구에게 사정설명을 하면 충분히 이해해주겠지만, 충분히 서운해하겠지. 나는 이미 충분히 미안해하고 있고 앞으로도 충분히 미안해하겠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살면서 이런 일이 너무 많다. 자라면서 삶의 바운더리를 확장해갈수록, 나라는 개인과 닿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더 많은 선택과 선택. 그리고 그 사이를 나라는 인간에 대한 타인의 기대치와 만족감과 실망감이 메운다. 나도 당연히 타인의 선택과 선택 중의 일부분이 되고, 기대치가 없는(척 하는) 나니까 만족감(에 대한 표현)도 없고 실망감(에 대한 표현)도 없는 것인데, 왜 니들은 나한테 니 기대치를 가지고 지랄을 하느냔 말이다! 이 쌕쌕들아!
분을 삭히고, 가만 그녀와의 대화를 생각해본다.
"삶에서 믿고 기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니요, 없어요." 내가 대답하고
그녀가 다시 되묻는다. "삶에서 믿는 사람이 없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무슨 뜻인데요?" 정말 궁금하다.
"그건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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