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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3년 9월 28일 :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박한 나날들. 나에 대한 믿음이 밑천을 드러낼수록 내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후회는 빨라진다. 이번주는 그 후회들이 완전 극에 달한 날들이었는데, 심지어는 마트에서 무엇을 사고 나오다가 바로 돌아서서 다시 다 환불해버린 정도. 그러고나서 다시 3분도 지나지 않아 '그냥 사서 나올꺼 그랬나?'. 초대받았던 공연도 간다고 했다가 안간다고 했다가 간다고 했다가, 다시 가는 길에 너무 지쳐 안간다고 했다가. (정말 죄송합니다.) 만나야 했던 사람, 만나지 말아야 했던 사람. 가야했던 곳, 가지 않아도 됐던 곳, 갔어야 하는 곳. 좀 더 시간을 죽여도 됐던 날, 조금 덜 부지런해도 됐던 날, 조금 더 바지런을 떨어서 해야했던 일. 들.들.들. 그 모든 들들들 들이 나를 들들들 볶는다.

 

<외로워서 그랬어요> 아 증말 외로워서 그런거야?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순간 다시 환불하러 들어갔던, 공연을 간다고 했다가 안간다고 했다가 다시 가는중이었다가 안간다고 했던 그날. 왜이래! 집으로 가는 길마저도 터벅터벅 걸으면서 '아 이 길로 괜히 왔네!' 왜이래! 친구에게 전화.

 

-나 이러저러해. 나 왜이래?

-나야 말로 이러저러해. 난 심지어 왜 사는지 이유도 모르겠다니까. 넌 나보다 낫다.

 

얜 또 왜이래. '타지생활에 외로워서 우리 그런건가봐!' 토닥토닥. 지쳤나봐.

아무튼 나보다 더 지치고, 심지어 삶에 대한 의욕조차 없어보이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내가 요즘 '가을탄다'는데. 뭘 제대로 타본적이 없는 내가, 정말로 가을을 타는 중이라면 닥쳐온 가을을 제대로 탈 수 있을런지.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나갈일이 있어, 편하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굳이 안 예뻐도 되는 자리이지만 굳이 조금은 예쁘게 하고 나간다. 가벼운 몸이 좋다며 스스로 흡족해해놓고 하루종일 먹어치운 양이 성인남자의 2배 정도. "야 너 정말 밥을 쉼없이 먹는구나!" 옆에서 지켜보던 이의 말. 유부초밥에 김밥에(아 엄마가 싸준 김밥을 충분히 먹지 못했다!) 볼이 미어터져라 먹어놓고는, 그 틈틈이 빵과 케이크 따위. 그리고 햄버거 세트. 게다가 저녁에 비빔국수, 잔치국수, 찐만두로 이어지는 향연에 아이스크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하루종일은 아니네, 딱 7시간 + 보너스 2시간 묻혀있었던 밤. 날이 서있던 온몸의 감각과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고보니 맥주랑 하와이언 피처도 마시고는 낮부터 헤롱거렸네. (도대체 얼마나 먹고 마신거냐! 이 1인 여자야!) 술기운에 좀 누워서 잠도 자고, 배불러서 누워서 또 자고, 초록색과 함께 있었더니 일단 호흡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정말 난 숲가까이서 살고 싶다. 좋아하는 음악과 초록색에 흠뻑 빠져있었더니, 이제야 나는 좀 후회도 덜하고 밥도 덜 먹는 착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비오는 밤. 다시금 나를 들었다놨다 잠시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비빔국수라니. 원.

 

 

 

 

* 지리산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어떤 처자가 한 말중에, 산골에 사니 동사가 있는 그대로 다가온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집 지으며, 농사 지으며 살다보니 '짓다'라는 동사가 온몸으로 느껴져, '짓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겠다고 했다. 동사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 수 있는 삶이라니.

 

우리는 동사에 너무 박한 삶을 산다. '하다'

뭐든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삶과, 자신 그리고 타인의 기준치가 허용하는 만큼만 '한다'

언젠가는 내 삶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모든 잣대와 금기를 벗어나 그야말로 '해버리고' 싶다. 크게!

그럴려면 결국 깜냥을 키워햐고,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야지. 그래야 어떤 짓을 해도 조금은 내가 내편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