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마는-사실, 감정의 뒤끝이라고는 티끝만큼도 없고 그저 쿨하디 쿨한 족속들이라고만 생각했던 男子들도 감정의 뒤끝을 태산만큼 간직한채 살기도 하더라만-여자인 나로써는 옛 친구를 우연히 마주하는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였거나,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라면 외려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텐데,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고 많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한 친구일수록 아는척 하기가 자뭇 쑥스러워 고개를 돌리게 된다.
얼마전 버스에서 중학교때 꽤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났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소원해지게 되어 가끔 교정에서 만나도 서먹한 인사를 건네던 친구. 바로 옆자리에 앉았어도 나는 몰랐으나-만약 알았다해도 끝끝내 모른척하고 말았을터- 친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응. 응. 말주변이 없는 편이 아닌데도, 자꾸만 단답형으로 딱딱 끊어지는 내 대답에 서먹한 분위기는 좀처럼 풀어지질 않았고, 나는 내릴 정거장이 되어 거의 도망치다시피 후다다닥 버스에서 내렸던 것 같다.
오늘도 출근길 버스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내 앞자리에 앉는걸 보았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책에 눈길을 파묻었다. 어유. 도대체 왜이렇게 쑥스러운거지. 히터를 튼 버스안 공기가 답답했는지 친구는 살짝 창을 열었다. 내릴 정거장이 되어 문득 고개를 들어 친구의 등을 바라보는데, 친구도 내릴 요량인지 내릴 채비를 하고는 열어두었던 창을 닫는다.
아. 내 마음 한구석이 문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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