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노트북이 생겼다.
개인공간에 컴퓨터를 들여놓지 않은지가 어언 2년은 족히 넘는 것 같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하루종일 붙들고 있어야 하는 기계뭉치가
너무 지겨워서, 너무 지겨워서
집에서는 꼴도 보기 싫었거든.
오늘 이렇게 근사한 노트북을 선물받아
좁디 좁은 방아에 들여놓고
선배의 블로그를 들어갔다. 핸드폰으로도 들어갔었지만, 컴퓨터를 켜고 정식으로 다시 들어간다.
선배와 오래 알았다.
어느새 그렇게 친해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물에 먹 스미듯이 그렇게 가까워졌다.
대학 입학하여 뭣도 모르는 글 나부랭이를 끄적이기 시작할때도
선배는 좋은 말을 해주며, 잘 쓴다고 칭찬해주었다.
멋지고 똑똑한 국문과 선배의 말이니 당연 믿음이 갈 수 밖에.
선배가 칭찬해주자 정말로 잘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나보다 인생을 그렇게 많이 산 것은 아닌데도
선배의 태어날때부터 좀 나이를 앞서가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와
선배의 짐짓 어른스러움과 구수한 말투가 어울려
항상 꽤 어른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꽤 어른이 하시는 일은,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멋지고 근사한 것 투성이었다.
예를들면 멋진 DSLR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일,
제본소에서 근사하게 잘린 종이들로 멋진 노트를 만드는 일, 또 선물하는 일.
개인의 사소한 생각들을 블로그라는 공간에 옮기고 공감 받는 일.
조팝나무를 조빱나무라며 껄껄 웃는 일. 그런 일, 그런 일 들.
멋지고 근사한 선배 옆을 졸졸 따라다니다보니
나도 멋진 DSLR카메라 들고 에법 사진찍는다며 똥폼정도는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사소한 생각들을 좀 더 많이, 길게 블로그라는 공간에 옮겨본 적도 있으며
봄이면 피어나는 조팝나무를 조빱나무라며 깔깔 웃곤 했다.
선배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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