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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에키벤 vol.1

철도 도시락이라. 꽤 멋진 명사와 명사의 조합이지 않은가. 철도. 도시락. 둘다 지극한 향수와 낭만을 뿜어내는 단어들이라-적어도 나에게는-철도 도시락을 다룬 만화의 발간은 무척이나 가슴설레고 반가운 소식.

철도 도시락. 기차에서 먹은 도시락을 생각하면 나는 빨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들이 아직 많이 어리고, 엄마 아빠도 어리고, 그래서 집에 자동차가 없던 시절. 강원도 산골에 살고있는 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기차를 한참 타고 가서, 또 버스를 탔던가. 버스에서 내려서 자박자박 철도를 한참 따라가면 나오는 할머니 집. 한참동안 기차에 앉아있어야 하던 우리. 뽈뽈뽈 옆으로 간식카트가 지나갈라치면 카트에 가득 담긴 과자들을 한번 보고, 엄마 얼굴 한번 보고. 또 과자 한번 보고, 엄마 얼굴 보고. 그렇게 흘낏흘낏 가재미 눈이 될라치면 엄마가 전기오징어-지남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다-나 과자를 사주곤 하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기차안이었을꺼다. 배고픔과 피곤, 심심함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엄마가 평소와는 달리 철도 도시락을 사주셨다. 쨘! 기차안에서 도시락 먹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동경해마지 않았었는데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두근두근하며 열어본 철도 도시락은, 별볼일 없는 마른 밥과 시어빠진 반찬 몇가지가 전부였지만 어린 마음에는 무척이나 맛있었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맛있었겠지 뭐. 몇숟갈 떴었나, 아니면 숟가락을 막 대려던 찰나였나, 덜컹덜컹하는 흔들림 탓에 그만 도시락 안에 들어있는 방울토마토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져버렸다. 발밑에 떨어졌으면 후후 불어서 먹기라도 했을텐데, 자꾸만 덜컹거리는 기차의 움직임에 맞춰 저 멀리 자꾸만 데굴데굴 굴러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는 그만 단념하고 밥을 먹으라는 눈짓을 보낸던 것 같다. 내 인생 최초로 맛볼뻔했던 방울토마토를, 그저 목격하는데 그치고 말다니.

요즘은 기차역마다 깔끔한 편의점이 구비되어있고, 사람들의 입맛도 많이 바뀌어 기차안에서 도시락을 파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지금도 철도 도시락을 떠올릴때면 조악한 분홍색 스티로폼 뚜껑을 열었을때, 앙증맞게 나를 향해 웃고있던 빠알간색 방울 토마토 한알이 떠오른다. 좋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