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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이혜선의 <살림이 좋아> : 이런 살림이라면 저도 좋아요

 

 

이 무슨 저질체력이란 말인가! 일요일 아침에 두어시간 등산하고 내려와서, 멤버들과 연희동 칼국수에서 따끈한 사골국물홀홀 들이켜고 집에 오니 오후 한 시. 샤워하고... 몇 시간을 내리 잤는지 모르겠다. 커헉! (일요일 오전 등산이 나의 일요일을 다 잡아먹는 거라면, 정말 오전 등산은 다시 생각해봐야!)

 

평일에는 회사일로 몸도 어느정도 지쳐있고, 마음도 복잡산만해서 사실 밤늦게 책을 잡아도 잘 읽히지가 않는다. 게다가 난 출판사 직원이 아닌가! 편집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밤 늦게까지 그러고 있으면 마치 집에서 야근하는 기분이다. 푹 자고 깨어나서 카레 한 냄비 만들어 먹고, 살림 책 잡아들었다. 한 권 꼬박 다 읽었다. 잘 만든 책이네.

 

살림과 요리에 관한 책을 유독 좋아하고 많이 모으는데 '이걸 따라해야지!'라기 보다는 읽어두면서 감각 쌓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하네? 이런 방법도 있네? 어, 이건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인데! 이런 식으로.

 

집안을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에 날이 서있는 편인데,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안락함과 단정함을 무척 좋아해서 그런 듯하다.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생에게 "나 정말 내 집을 이렇게 꾸미고 싶어!" 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늘 "보기에만 좋지. 선반에 먼지 얼마나 쌓이는 줄 아나." 식의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중의 이상을 쫓지도 않고, 눈 앞의 현실에 완전히 순응하는 것도 아닌 것. 즉,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리고 있는 이상의 언저리를 조금씩 넓히는 방법이 답인 것 같다. 집 꾸미기에도 나의 그런 논리가 어느 정도 적용되는데, 촌스러운 벽지를 깔끔한 페인트로 덮지 못하고(아, 왜 엄마가 이상한 도배지로 도배한다고 했을 때 그냥 두 눈 멀뚱멀뚱뜨고 구경만 했던지!) 오픈 선반을 벽마다 달지도 못하고, 베란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나름 내 식의 카페를 구축해보려고 노력했고, 놀러오는 사람들의 "집 예쁘다" "누나 미술 전공 했죠?" 라는 말을 들으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그 이쁜 집을 두고서 다시 조그마한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또 나름 예쁘고 단정하게 꾸며보려고 많은 시간을 들인 작품이다. 세간 살이도 별로 없고, 좀 오래된 집이라 가구 배치며 질이 썩 좋진 않다만 놀러온 친구의 "괴물같은 년. 이걸 어떻게 정리했대?" 라는 욕같은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으흐흐흐흐.

 

책 얘기는 산으로 가고 '나 정리 잘해요. 나도 살림 잘해요' 라는 글밖에 안 쓴 것 같지만, 어쨌든 사는 공간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예뻐야 먹고 들어간다. 살면서 계속 "예쁨"을 유지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산다는 건 '어지럽힌다는 것' 이니까. 그래서 예쁘게 살림하는 여자들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사는 공간을 예쁘게 유지한다는 것.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아는 것. 항상 수건과 양말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을 것. 밥은 좋은 식탁에서 예쁜 공기에 담아 먹을 것. 무슨 말도 안되는 공상과학소설의 일부같지만, 여자라면 - 혹은 살림을 좋아하는 남성이라면- 언젠가는 이렇게 살아야 할 지어다.

 

적지 않은 살림책을 봐왔지만 띵굴마님의 솜씨와 센스, 정성이 차고 넘치는 책이다. 2권이 기대된다. 설거지나 하러 가야지.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