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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김훈의 <개>_ 개같은 인생을 위하여!

나는 개를 무진무진 좋아합니다. 아홉살 여름에 시장에서 사온 강아지가 가출한 것이 2년전이었고, 돌아오지 않을 가출이었다는 걸 안뒤로 얼마뒤 다른 개를 데려왔으니(그 개는 너무 말을 안들어서 작년 여름에 엄마가 과수원에 줘버렸습니다.)내 살아온 날의 반 이상을 개와 함께 보냈다 할 수 있겠지요.

'삼돌이 과수원에 보냈다' - 지난 8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붐비는 서울의 지옥철 속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엄마의 문자를 받고서는 잠시 멍했던 것 같아요. 먹성좋고 힘이 세서, 목청도 유달리 크던 녀석이라 신고하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으름장도 있었고 아빠가 이유없이 미워하기도 했었고...아무튼 퇴출의 이유는 많고 많았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과수원에 달라고 했대요. 과수원으로 갔는지, 보신탕집으로 갔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무튼 삼돌이와의 마지막을 계기로 우리집에 더이상 개는 없게 되었습니다. 아!

십여년 이상을 보고살던 짐승이 없어지니까 굉장히 이상하더라구요. 한동안은 빈 개집을 그대로 방치했었는데, 어느날 보니 개집은 사라지고 대신 화분하나가 그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몹시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제가 개똥을 잘 치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짖게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으니까 다시 개 키우자는 소리를 못하겠더라구요. (예전에 한번, 너무 시끄러워서 개 주둥이에 노끈을 둘둘 묶은적이 있습니다. 이정도면 동물학대로 잡혀갈수도...) 살아있는 싸이렌이 과수원으로 가고 나서 곧바로 2주뒤에 도둑이 들어서 정말로 개의 위력을 실감했달까. 아. 그놈이 짖어도 그냥 짖은게 아니구나. 아무튼 우리집은 도둑이 들어도 다시 개를 키울 생각은 없는것 같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어느날 밤에 TV를 켜놓고 계속 뒤척이다가 마침 <인간과 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누워서 그걸 보고 있자니 개에 대한 그리움이 배로 증폭되더군요. 아...개! 개! 개! 화면속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 다큐멘터리의 중간중간에 인용된 글이 김훈 작가님의 것이더군요. <개>를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그 밤에 홀로 TV앞에 누워 개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끼면서 책을 사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작가님을 실제로 뵌적은 없지만, 저는 김훈 작가를 좀 무서워 합니다. 사진이나 몇몇 인터뷰 영상으로 훔쳐본것이 다이지만 정말 무서워요. 뭐랄까. 훤히 꿰뚫어본다는 느낌? 펜으로 꿰뚫어보는건 이해를 하겠지만, 눈까지 부리부리하시니 왠지 그 앞에 서면 괜시리 주눅들 것만 같습니다. 저절로 쭈뼛쭈뼛 할 것 같아요. 아무튼 항상 强하게만 느껴지던 김훈 작가의 <개>는 의외로 굉장히 부드러웠습니다. 개 잔등을 쓸어내리는 것처럼 복슬복슬한 이야기입니다. 복슬복슬한 속에 단단하고 뜨끈한 개의 몸통같은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개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요, 개의 시선을 통해서 김훈 작가는 우리에게 참다운 인생에 대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부드럽고도 뜨끈하게 일러줍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말할것도 없구요. 책을 덮을무렵에는 코끝이 찌릿찌릿 해오더군요.

다큐멘터리에 인용된 글 중에서, 이 책을 꼭 사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책을 사자마자 처음에는 그 문장을 찾느라 이리넘기고 저리넘기며 여념이 없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찾게 되었습니다. 다큐에서 봤을때의 느낌과 이야기 속에 녹아있을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못 찾지 않았나 싶어요.

...개 한마리가 달밤에 울면, 그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고 울음이 또 울음을 불러와서 온 동네 개들은 울음에 울음을 잇대어가며 울고 또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