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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요즘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한다.'
 
이 한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맴 떠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한편 적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계속 미뤄오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 아이에 대해서 쓰는 것.

요즘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한다. 사무치게 그립다거나 떠올리면 가슴아프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아이가 자꾸 생각이 난다. 안부 정도라고 해두자.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무얼하며 지내는지, 원하던 것은 이루어 가고있는지...

한번쯤은 스칠법도 한데, 우연히 마주칠법도 한데 그 아이는 그뒤로 한번도 내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나를 한번쯤 멀찍이서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러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전에 홀로 연애에 대한 잡상을 끄적이면서 '연애란 누군가를 나의 세상 가장 가까이, 또 가장 멀리 데려다 놓는 일련의 과정이다' 라는 어줍잖은 정의를 내린적이 있는데, 혼자 내린 정의에 혼자 공감하기 머쓱하지만 참 맞는말이다. 나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던 그 아이는, 나의 사소한 비밀들과 버릇들을 고이 안고 나에게서 멀리 떠나버렸다.

그 아이.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를 '아이'라고 칭하는게 편할까. 아마도 그의 순수한 면모를 많이 보았기 때문일테다. 그는 종종 나에게 '너는 나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었다' 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에게 꼭 닫힌 겉모습과는 다른, 어리고 여린 그의 마음을 나는 많이도 엿보았다. 가끔씩 짧은 편지글이나 직접 찍은 사진들을 그 아이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많이 위로받고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헤어지자.
우리는 헤어지자 라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좀 더 갖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로 했던 것 같다. 관계의 일시적인-어쩌면 영원한-단절을 종용한건 나였다. 그 무렵의 나는 그 아이에게 뭔가 굉장히 지쳐있었던 것 같다. 아니, 스스로에게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내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난것을 스스로 시인하기 두려워, 지금까지도 그 아이 혹은 나에게 애꿎은 굴레를 씌우고 있질 않나. 그래. 돌려말하지 않을게. 그 무렵 내 사랑은 끝났었다. 쥐어짜내도 누군가를 좋아할만한 감정의 여유가 생기질 않더라. 사랑하는 척,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잔인하지만 노력해봤었다. 끝내는 안되더라.

마지막.
그 아이가 요즘 유난히 밟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마지막' 이 미진해서 인 듯 하다. 결말을 확인하지 못한 소설처럼, 엔딩장면을 미처 못 본 영화처럼. 그 아이가 나에게 그렇다. 마지막을 고한 어느날 전에 우리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만났을 것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자주가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반찬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는 그를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타박했을 것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안녕' 하고 헤어졌겠지.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가야하는 너를 위해 버스를 함께 기다려 주었을지도 몰라. 여느때와 다름없는 날들처럼 말야.

갑작스레 빠져들어 열렬하게 사랑했던 그 남자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직 아련하고, 헤어진 뒤 참으로 어줍잖은 재회를 해야했던 그 녀석의 떨떠름한 표정도 생생한데 유독 마지막으로 본 그 아이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았던 것일까.
그것이 마지막이라고는 꿈에도 모른채말야.

문득, 마지막으로 본 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나는 몹시도 네 생각을 많이 하는지 몰라.

어느 날, 너는 나를 스쳐지날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계에 마침표를 꾹 찍어주려고.
'우린 정말 안녕이예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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