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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최관장님. 당신 마음 잘 알아요. 사랑하는 이에게 주려고 어렵게 준비한 선물을 집어던질때의 그 마음. 당신이 집어던지기 3초전에 생각했어요. '아마 집어 던질거야. 그럴 수 밖에 없을거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내 손으로 집어던질 수 밖에 없는, 집어던진다 는 행위의 표현을 위해 당신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껍질을 깨부수고 나와야 했는가를 알아요.

사랑. 진정한 사랑은 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하지요.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나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 그래요. 내 사랑은 어립니다. 내가 쏟는 사랑에 이자가 가득 붙어서 되돌아 왔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나는 너무나 행복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욕심많은 사람은 아니랍니다. 다만 조금의 기대를 가지고 있을뿐이에요. 다들 그러하듯이, 다들 어린 사랑을 하듯이 나도 당신에게 조금의 기대를 할 뿐입니다.

나는 자존심이 센 여자입니다.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해 내 삶이 뒤죽박죽 되버리는건 참을 수 없어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머릿속에 하루종일 당신이 걸어다니고, 마음은 좀처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90% 이상이 '아 젠장. 또 사랑에 빠져버렸군!' 한다잖아요. 스스로 언제나 고요하길 바라는 나는,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상태를 경계합니다. 몇몇은 그런 저를 두고 네가 무슨 금욕주의자냐 하면서 살짝 놀려주기도 했어요.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순간 나는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한 사람이 내 우주를 온통 휘젓고 다녀요. 잘 닦여 반들반들한 정육면체같은 내 우주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됩니다. 가장 중심에 있어야할 태양 자리에는 어느새 당신이 비집고 들어와 앉아있네요. 네가 뭔데 내 세상을 뒤죽박죽 만들어? 소리쳐도 소용없다는걸 알아요. 당신에게 문을 열어주고 태양의 자리를 내준건 바로 나였으니까요.

어른인 척 하면서, 나도 당신 우주의 태양자리가 탐났던 것일까요. 당신이 나와 똑같이 상처받지 못해서, 당신의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나는 몹시도 화가 났던 걸까요. 내가 당신에게 문을 선뜻 열어주었으니, 당신도 나에게 문을 열어주어야 마땅한것 아니냐고 소리쳐 따지고 싶었던 걸까요. 바보같긴.


* 진정한 사랑 을 곱씹어봅니다.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랑. 어찌보면 짝사랑의 맥락과도 닿아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사랑은 한없이 기쁘고, 짝사랑은 한없이 슬픈 사랑입니다. 짝사랑을 지탱하는 궁극적인 힘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 이니까요.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랑인 척 하면서 사실은 온통 기대하고 있는 사랑이니 얼마나 아파요. 어리고 바보같은 나란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신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은 짝사랑이 될 수 밖에 없겠지요. 겉으로는 한없이 주는척 하면서 속으로는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말랑했던 인생의 어느 무렵, 지독한 짝사랑을 해본적이 있답니다. 그 뒤로 야멸치게-영어로는 cold hearted 라네요. 이렇게나 적절한 표현이!-다짐한 것이 '짝사랑은 다시는 하지 말자' 였어요. 그 뒤로도 간혹 짝사랑에 빠질뻔 했지만-사랑의 많은 시작이 짝사랑에서 비롯되잖아요-마음을 다잡으며 힘차게 도리질을 하곤 했습니다. 짝사랑은 절대 안해! 결국 누군가가 나를 짝사랑해주기를 바래왔단 것인데, 그러고보면 참 이기적이죠. 나는 힘들어서 싫으니 당신이 하세요 라는.

짝사랑은 다시는 없는데, 없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다시 '짝사랑'을 내 인생의 용어사전에 등재시킬지를 놓고 요 며칠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보단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했지만, 나는 알아요. 당신은 정말로 많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걸. 나만큼이나 그런 사람이라는걸 알아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받고만 싶어하는 두사람이 만나면 '연애'라는게 성립되기 힘들잖아요. 사랑받고 싶은 나를 숨기고 사랑하는 나 인척 하려면 나 다시 엄청나게 힘들어질 것 같아서 고민이예요. 알아요. 나 못되고 이기적인거. 힘든거 싫어하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거. 지금도 이렇게나 힘들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없어요.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으려면 나 어떡해야 할까요?


*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새로나온 딸기맛 풍선껌일까요. 나는 당신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당신은 내가 참 쉽네요. 사랑이 당신에게는 얼만큼의 무게일까요. '사랑합니다'라는 당신의 말 속에는 진심의 무게가 얼마만큼 담겨있나요. 나는 시옷 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아요. 이해를 기다리는 오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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