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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도시락통 : 오늘도 나의 하루는 안녕합니다

매일매일 글을 쓰지 않는 가장 좋은 핑계 중의 하나는 '오늘은 쓸 말이 없다' 라는 핑계가 아닐까요. 더 이상의 핑계는 그만대고 싶다, 그렇다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소재를 찾자, 매일매일 마르지 않는 나의 샘물은 무엇일까, 옳타쿠나! 밥이로구나. 인간은 매일 무언가를 먹어야하고, 나는 먹는 것에 꽤나 관심이 있는 인간이니까. 


일주일의 오일은 직장에 나갑니다. 그리고 출근하는 나의 손에는 도시락 가방이 들려있습니다. 아이들 신주머니처럼 노오란 바탕에 도라에몽이 빙긋 웃고있는 나의 도시락가방. 스타일 구기기 딱 좋지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대부분의 아침, 노란색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합니다. 일찍 일어난데다 머리도 감을 필요없고 아침시간이 아주 많은 날 - 그런 날이 몇 번이나 있을까!- 에는 공들여 도시락을 싸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아침은 허둥지둥으로 시작해 허둥지둥으로 끝납니다. 잎채소 한 줌에 바나나, 아몬드 가루를 넣고 갈아낸 주스, 견과류, 방울토마토, 직접만든 고구마말랭이, 삶은 달걀과 고구마 같은 것들. 너무 바쁜 날엔 아예 방울토마토 한 통을 통째로 들고 출근할 때도 있고, 어제 먹다 남은 떡볶이를 냄비에서 그대로 도시락통으로 옮겨담은 뒤 달려나갈 때도 있어요. 도시락 가방에 담기는 메뉴는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매일의 저녁이면 빈통을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요. 


올해의 상반기가 채 끝나지 않았지만 감히 올해 최고의 책이라 자부하는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며칠 전에 끝냈습니다. 어느 날엔 버스에서 읽다가 눈물을 쓰윽 훔치기도 했고요. 이 책을 이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입니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앉은 자리를 예술로 만드는 방법' 에 대해 일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이 부러 '예술'하려고 달려들지 않았어도, 너무나 진지한 태도로 매일에 임하다보니 삶이 저절로 예술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쓴 허혁 작가는 전라도의 버스운전기사입니다. 매일 버스를 운전하며 만나는 손님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각으로 풀어냈습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 늘 대중교통에만 의지해 다니다보니 버스기사님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정지신호마다 '씨발'을 만트라처럼 외는 이도 있고, 받아주는 이 없어도 버스에 오르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씩씩한 인사를 건네는 이도 있습니다. 버스라는 작은 공간이 뭐 그리 별 볼일 있겠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누가 모느냐에 따라 버스 안이 별천지가 될 수도 있더군요. 


이어 소개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책은, 여기저기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띄엄띄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아픈 아내를 위해 요리 한 남편의 일기이자 레시피입니다. 세 글자로 딱 줄이면 '병수발' 인데, 남편은 세 글자를 두툼한 책 한권으로 풀어냈습니다. '병수발'이라는 세 글자와 243페이지 짜리 책 한권의 간극만큼, 무언가가 가득한 글입니다. 아마 한 권을 다 읽고나면 '무언가'를 더듬어 볼 수 있을지도요. 


빈 도시락통이 담긴 가방을 덜렁덜렁 집으로 들고 돌아오는 길. 참 별볼일 없는 하루입니다. 오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고, 간간이 두통이 있었고, 팀의 막내가 갑자기 그만두어서 급작스런 충원이 있었고, 어김없이 붐비는 지하철에서 책을 좀 들여다본 퇴근길입니다. 그래도 오늘 많이 웃었고, 비온 뒤 푸른 하늘도 들여다 보았고, 그 속에 흘러가는 구름에게도 눈길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맛있는 것을 나누고,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도 한 통 했고, 이렇게 날을 넘겨가며 글 한 편을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만하면뭐, 나도 예술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