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매일의 얌,채식

브루스케타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나만의 가장 완벽한 방법



부처핸졉! 부처핸졉! 부처님 오신 날은 참 좋은 날입니다. 특히 평일에 오신 해는 더더욱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짝꿍과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국립수목원에 가기로 한 날! 짝꿍은 그저 늘 해주던대로 식빵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지만, - 코코넛오일을 발라 앞뒤로 노릇하게 식빵을 구운 뒤, 한쪽엔 과일 잼을, 다른 한쪽엔 아몬드버터를 바르는 게 저의 방식입니다 -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식빵을 홀라당 태워먹은 덕에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마침 집에 식빵과 함께 사다둔 호밀빵이 있어 브루스케타를 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아스파라거스도 있겠다, 계란도 있겠다, 곰취페스토도 있겠다, 요리책을 탁 펼쳐두고는 좁은 주방을 개미처럼 왔다갔다하며 열심히 만들었어요.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아스파라거스를 손질해 굽고, 그 사이 빵도 구워두고, 수란을 만들고 과일도 준비하고 어제밤 양념에 재워둔 더덕구이도 만들고. 바쁘다 바빠. 김밥에 곁들일 반찬도 색을 맞춰 가지런히 준비하고 식사 후 먹을 과일까지 세 종으로 준비 완료!


초록이 그득한 공간에서 돗자리 탁 펴고 느긋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 좋을 것 같아서 나름 기대가 컸는데, 기대는 출발부터 우리를 보기좋게 배반했습니다. 웬 차가 이리도 많은지 집에서 출발해 수목원에 도착하는 데까지만 세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오죽하면 버스에서 내려 걸었는데 버스보다 더 빨리 도착했어요. 이미 점심 때를 놓친 터라 얼른 수목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맛있게 식사를 마쳐갈 무렵,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빗방울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


아, 오랜만의 소풍이라 기대가 참 컸는데 아쉽게도 우산을 들고 수목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어요. 비가 꽤나 세차게 쏟아져서 추위에 떨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오는 길도 잔뜩 막혀서 두어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니 오늘 하루 도로에서만 다섯시간 이상을 있었어요. 아까운 내 휴일. 마음 한 구석이 찢어지는 듯 하지만, 빗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리던 황홀한 초록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던 빗소리, 빗방울이 맺혀있던 예쁜 작약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브루스케타는 바게트에 치즈, 과일, 야채 등을 올려먹는 간식입니다. 요리책에 나온 그대로 할 수도 있겠지만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을거예요. 저는 요리책에 쓰인 바질페스토 대신 곰취페스토를 썼고, 좋아하는 치즈를 듬뿍 올려 나만의 브루스케타를 만들었어요. 오늘을 보내는 방법도 어쩌면 브루스케타를 만드는 것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라는 나의 빵 위에 맑은 하늘과 눈부신 태양을 올렸어도 근사했겠지만, 빗방울과 조금 더 짙어진 초록과 귓가를 부드럽게 간질이는 빗방울 소리를 올린 하루도 충분히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