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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막역한 친구와 사소한 문쟁文爭(?)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친구의 사소한 발언과 행동이었는데, 거기에 장작을 패고 땔감을 나르고 불을 붙인게 바로 저의 몫이었지요. 당시에는 COOL하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워낙 옹졸한 성정인지라 마음에 두고두고 남아 급기야는 화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할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말하자니 이삼일이 지난 일을 아직도 고스란히 마음에 품고있는 내가 쫌스러워 보이고, 그냥 넘어가자니 화가 목까지 차올라 부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책을 뒤져 틱낫한 스님의 <화>를 찾아내었습니다. 화를 참지못하고 울컥하는 성미를 고쳐보고자 지난날에 마련해둔것이지요.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내 마음은 연신 '말해? 말아? 말해? 말아?'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기에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올리 없었습니다. 그 중 마음을 끈 한구절은 '화는 24시간 전에 말하라'하는 것입니다. 하루이상 담아두고 있으면 화의 에너지가 강해져 휘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다! 물론 이틀,삼일이 지난일이지만 이 상태라면 1년,2년은 족히 담아두고 있을것같아 친구의 미니홈피를 이용해 구구절절 조목조목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컴퓨터를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 이틀은 '읽어봤겠지? 날 쫌생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안절부절. 이럴꺼면 말한들 무슨소용이랴만은, 아무튼 오늘 용기를 내어 읽어본 친구의 답변중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되는 문장은 '친구의 시각에서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라도 상대방의 시각에서는 생각의 근거가 되고, 논리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절실하게 느낀 계기랄까요?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놀라게 된데는, 나도 모르게 나 역시 '나의 시각에서 친구행동의 근거를 마련하고 살을 보탰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입니다. 사소한 친구의 행동 하나를 문제삼고 넘어졌습니다. 저로써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에티켓이며, 아무리 친구라도 그런것은 지켜야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언짢았습니다. 그리고 또 덧붙여 생각하기를 '친구는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에 있으니까 저런 행동을 하는것이 당연하게 여겨질수도 있겠다. 역시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옛날엔 안 저랬는데.'. 그 친구도 역시 생각하기를 '너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네가 이런이런이런 상황에 있으니까 아마 그런게 표출된거 같은데' 였습니다.

물론, 친구가 지적한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속에는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그러한 이유도 들어있을지 모릅니다. 갑자기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친구에게 똑같이 되물어보고 싶어지네요. 아마 손사래를 치면서 '말도 안된다!'라고 말하겠지요?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요.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이다'. 오해라는 손사래는 그만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준 친구에게 밥이라도 한끼 사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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