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의 무게가 심상찮아지는 순간. 몇 통을 쟁여야하나. 쓸어담아야 하나.
* 가끔, 아주 가끔 마트에 간다. 한달에 한 번? 웬만한 것들은 인터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동네에 30년 역사와 훌륭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는, 이름도 뭔가 옛스러운 '사러가 마트'를 들릴 일이 잘 없다.
이틀전인가, 오랜만에 마트를 들렀다. 늘 그렇듯이 비싸고 고급진 열대과일코너에서 그들의 아리따운 자태에 넋을 놓고 있는데 뒤에서 중년 아저씨의 전화통화 소리가 들려온다. 퇴근 무렵의 여의도나 시청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넥타이 부대 아저씨였다.
"여보! 오늘 참외가 세일인데요~ 참외 사갈까요? 네네. 이게 여섯개에 만 이천 구백원인데~" 그 말투며 목소리가 하도 다정스러워서 조금 멀찌감치서서 줄곧 도청아닌 도청을 했다. 아내가 참외를 사라고 했는지 전화를 끊은 아저씨는 진열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판매원 아줌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좀 더 신선하고 좋은 과일을 고르려는 아저씨 모습이 귀여워서 빙긋 웃고 있었는데, 또 다른 득템을 했는지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여보오~ 토마토도 오늘 세일을 하는데요~"
다른 지역보다 퍽 다정스러운 서울의 지역색을 차치하더라도, 쫀쫀하게 넥타이까지 두른 중년의 신사가 마트에서 과일을 고르며 아내에게 미주알고주알 소란한 모습은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며칠동안 아저씨를 자주 떠올렸으니까.
처음에는 아저씨가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날, 과일을 고르는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어쩜 그리 자상하고 가정적이시냐'고 침을 튀기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며칠간 곰곰 생각해보니 아내가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 같더라. 피곤한 퇴근길, 마트에 들러 세일하는 과일을 기웃기웃하게 만들만큼의 근사한 아내인 것이다. 젊은 남성이면 신혼의 맛이라고 이해를 하겠으나, 부부가 함께 건너온 세월을 헤아리면 아저씨의 아내가 정말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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