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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먹는 존재

 

*

 

 

집에 뒹굴뒹굴 맛없이 굴러다니는 사과가 있어 어제 아침에 잔뜩 갈았는데 시간이 없어 마시질 못했다. 오늘 아침에 마시려고보니 거무죽죽한 색깔로 변해있었지만, 하루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뚜껑을 열었는데 이게 그대로 굳어서 안 나오는거다. 흠. 각을 좀 더 기울여볼까 싶은 찰나, 사과 덩어리가 내 얼굴을 가격했다. 퍽. 아침부터 사과팩을 하는구나. 아침마다 주스 갈아마시는 우아한(?) 타입도 아니었는데, 역시 사과는 나의 푸대접을 알고 있었나보다. 맛없다고 냉장고에 넣어주지도 않고 방바닥 여기저기 굴렸더니 액화되어 복수를 하는구나. 흥. (뭔가 사과 영혼의 복수같아!)

 

 

 

*

 

 

이참에 아침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아침을 안 먹는다. 집에서 식구들과 같이 지낼때는 아침을 안 먹는다는건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굳이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 보다는 가풍이 그랬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잠결에 입에 퍼 넣었다. 우리집 식단이 또 웰빙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퍼넣은 것들은 마가린을 아빠 밥숟갈로 푹푹 떠 넣어 비빈 밥이나 여러 고명을 담뿍 올린 뜨거운 신라면 한 대접.- 정말로 산더미같은 한 대접이다, 고봉밥대신 고봉라면 이랄까. -  아침에 눈뜨자마자 라면은 좀 많이 먹었다. 일주일내내 눈뜨자마자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어머니가 라면을 좋아하신다. 커서 사람들에게 '마가린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그걸 느끼해서 어떻게 먹냐, 라고 반문하곤 했다. (물론 '눈뜨자마자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깜짞 놀라긴 마찬가지.) 나도 깜짝 놀랐다. 다들 뜨거운 밥에 마가린을 푹푹 떠넣고 비빈 꼬순 밥을 먹고 큰 줄 알았는데. 그 맛을 모르고 자란 어른들도 있다니.

 

 

어릴때부터 위가 안좋아서 자주 체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내 식사량을 줄여줄 생각은 한번도 안하고 바늘과 실을 상비했다. 내 양 엄지 손가락은 늘 바늘 자국이 뿅뿅 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도 밥을 덜 먹으면 됐을텐데, 밥을 한 숟갈이라도 남기면 어머니에게 등짝을 후려' 쳐' 맞았기 때문에 늘 과도한 양을 먹었다. 커서 또 알았다. 딸 가진 엄마들은 딸내미 살찔까봐 일찌감치 많이도 못먹게 하고 예쁘고 고운 것들만 먹이려 애쓴다는 사실을. 엄마는 늘 내가 좋아하는 비스켓이랑 과자를 듬뿍듬뿍 사줬다. 국희샌드가 맛있다고 하면 그날 저녁에 가장 큰 용량으로 열댓박스가 쌓여져 있었다. 그래서 아가씨가 된 지금도 크게 몸매관리라던가 식단에 신경을 안 쓴다. 못쓴다가 맞을꺼다. 지금도 오레오를 좋아하긴 하지만, 오레오를 너무 좋아해서 온 서랍마다 오레오를 차곡차곡 쌓아두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오레오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 얼굴에 살이 통통 올랐었다.

 

- 너 살 쪘어.

- 오레오 많이 먹어서 그래.

- 왜 그렇게 많이 먹어?

- 맛있으니까.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물어본 친구를 바라봄)

 

 

 

아침밥을 안 먹게 된 것은 중국 유학을 가면서인데, 중국은 아침 식 문화가 간소하다. 아침을 초코파이만한 빵 한 조각이나 가벼운 죽으로 대신하는데, 처음에 중국 유학을 가서 배가 고파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기름에 튀긴 빵(요티아오) 이나 두부죽(또푸나오) 등으로 충분히 한끼가 될만한 칼로리이긴 한데, 아침마다 산더미같이 뭔가를 먹어대던 스물초반의 위장에게 그런 빵이나 두부가 성에 찰리가 있나. 중국에서 그렇게 부지런히 뭔가를 먹어댔어도 살이 쭉 빠져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침과 더불어 김치를 안 먹게 됐다. 어쨌든 중국은 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

 

 

주말에 나가는 합창단에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단 것에 대한 탐닉이 나와 거의 같은 급인 분인데, 누군가들이 사온 간식에 제일 처음부터 제일 끝까지, 줄곧 /곁에서 /꾸준히 /항상 /바닥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 붙어서서 먹고 있는 인물이 나와 할머니다. 합창 첫 시간에는 테이블에 예쁜 떡이 놓여져 있었는데 지각해서 제일 늦게 도착해놓고는 바로 떡을 집어먹었다. 알고보니 사람들은 다 누가 사온것인지 몰라서 못 먹고 있었던 것. 늦게 온 아가씨가 너무 자연스럽게 떡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스르르르 떡 상자로 다가가 열심히 집어먹으니 그제서야 다른 분들이 집어 먹기 시작하더라. 내가 그런 사람이다. 먹는 순간에 출처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도착처가 어딘지 확실히 아니까. (낄낄)

 

 

지난주에도 던킨 도나쓰 상자를 할머니와 함께 탐험했다. 할머니는 연신 '하나만 더 먹을까?' 하면서 불필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뿐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애당초 그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고 할머니를 정신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 아가씨는 결혼했어, 안했어? 요즘은 통 모르겠어. 저 아가씨도 글쎄 애 엄마라는거야.

- 그러게요. 요즘 청년층 결혼문제가 참 큰일인데요.

- 응?

- 아, 저는 애 없습니다.

- 아가씨도 아침 안 먹었나보지?

- 네. 저는 원래 아침 안 먹어요.

- 아침 안 먹으면 5년 일찍 죽는다고 내가 말 안했어?

- 누가 죽어요?

- 내가 지난주에 글쎄, 말을 했는데 ~ 티비에 나왔다고. 아가씨는 그 때 안 들었나보지?

- 네 그런가봐요.

- 아침 안 먹으면 5년 일찍 죽는다는거야. 티비에 박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 아 저는 티비가 없는데.

- 응?

- 제가 어떤 책을 봤는데 아침 안 먹으면 오래 산대요.

- 박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니까.

- 제가 보는 책도 박사가 쓴건데.

- 아침을 안 먹으면 5년 일찍 죽는대.

- 아침 안 먹으면 오래 산대요.

- 알았지?

- 네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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