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인기있는 블로그가 아니라서 때로는 다행이다. 도대체 하루에 포스팅을 몇 개나 하는건지. 방안으로 쭈악 들어오는 기세좋은 햇살을 받으면서 침대에 엎드려있다. 사노 요코 할머니의 겨된장 이야기를 읽다가 -겨된장은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던 거라 - 차라도 한잔 마셔야지 싶어서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는 중. 일본인 작가의 책을 읽고 있어 그런지 문득 일본의 다도 생각이 난다. 뭘 그렇게 귀찮고 복잡하고 쫌스럽게 하하호호 불고 돌리고 따르나? 그냥 한잔 쫙 마시면 될껄, 하고 줄곧 생각해왔지만 작은 일도 허투루 넘기려는 법이 없는 일본인의 정서가 사실은 요즘 시대에 참 귀하고 반가운 법이다. 나도 정좌하고 이런저런 다기를 갖춰놓고 허공에 잔을 돌렸다가 따랐다가 작은 빗자루로 찻잔을 막 휘저었다가 하고 싶은 오늘. 그러나 국그릇인지 찻잔인지 알 수 없는 1리터 가까운 커다란 잔에 - 나는 당연히 찻잔으로 쓸 요량으로 샀는데, 내 방에 놀러온 친구가 잔을 보고 당연히 콘프레이크 그릇으로 알더라 - 계피 티백을 부려놓고 있다. 물도 투박한 전기포트에 콸콸 신나게 끓였다. 그러나 일제 다기 세트가 당장 눈앞에 없다고해서 불쌍한 기분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영혼까지 팔 수 있을 정도의 기분좋은 계피향에 킁킁 온 몸을 내맡기고 그저 한잔 쭈악 들이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 사는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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