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색을 무척 좋아해서 선택지가 있다면 보라색을 고른다.
"갑자기 왜 이래? 어제까지 우리 좋았잖아!!" 눈물이 툭 터지면서 당신을 향한 원망스런 한마디를 뱉었다. 어제까진 그렇게 포근하더니 갑자기 하루 아침에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나. 남친 얘기 아니다. 날씨 얘기다. 금요일까진 밤새 비 퍼부어도 촉촉하다가 갑자기 어제는 눈발이 날리고, 오늘은 영하 십도까지 떨어졌다. 백수력을 발휘하여 오늘은 집안에만 있어야지.
불을 끄고 책상에 앉아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장이나 좀 넘겨볼까 하는데, 순간 이맛살이 순간 찌푸려진다. 검지 손가락으로 시선이 향하는 곳을 쿡 찍었다. 맛을 보진 않았다. 먼지다. 먼지로구나. 에헤야.
나는 물건을 늘 제자리에 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두고 '정리정돈녀' '바구니 집착녀' (일단 바구니만 있으면 뭐든 정리가 되기에!)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늘 '제자리'에 둘 뿐, 사실 쓸고 닦는데는 별 관심도 열정도 없다. 특히 닦는 것은 너무 귀찮고 싫다. 오죽하면 한때는 정말 노홍철과 결혼하고 싶었을까. 나는 물건을 대부분 제자리에 두는 편이니, 쓸고 닦고 광내는데 혈안이 된 저런 남자랑 같이 살면 서로 불편할 일은 적겠다 싶어서.
어쨌든 아무리 귀찮아도 햇빛을 받아 뽀오얗게 자태 자랑하는 먼지를 목도한 이상 닦아야지. 책상 유리 위의 먼지를 닦으면서도 별 이야기가 다 떠오른다. 마른걸레 다음에 물걸레다, 물걸레 다음에 마른걸레다 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피 터지게 싸웠다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김점선 화백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청소를 하도 안해서 먼지 뭉치가 방 여기저기 굴러다녔는데 그걸 보고 아름다움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책에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던 것 같다. 역시 예술가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봐.
원래 각잡고, 그러니까 최소 노트북이라도 켜고 블로그 글이든 뭐든 쓰는 편인데 요즘은 그냥 생각나면 뚝딱뚝딱 뭐든 핸드폰으로 끼적이고 있다. 영화도 꼭 영화관가서 보는 편이니 아예 노트북을 켤 일이 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일상을 좀 더 충실히 잘 기록하고 싶어서다. 시간 없어지면 블로그든 뭐든 또 새카맣게 잊고 세이 굳바이일텐데, 지금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 뭐든 생각이 많아질 때 열심히 끄적거려 두어야지.
어제 본 <캐롤>의 대사 하나가 줄곧 맴돈다. 사람에게 끌리는건 물리학 같은거라고. 그러고 보면 그도 그럴 것이 도무지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계속 좋은 사람이 분명 있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이 '사랑받기 위해' 하는 일련의 노력들은 어쩌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수도 있다. 당신의 마음 속에 품은 별을 알아봐 줄 사람은 분명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별을 용케 알아본다면 다행인데, 요즘은 마음 속의 별보다는 손가락 위의 별이 몇 캐럿이냐가 더 대접받는 시대. 내가 아는 한 언니는 '사랑찾지 말고 몸 편한 것 찾으라' 며 나를 만날때마다 대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래된 친구 역시 '나 좋다니까 나도 그냥 사랑한다고 하는거지. 솔직히 그 마음이 얼마나 가겠냐'며 정신 차리라고 나를 타박한다. 하나뿐인 남동생도 하나뿐인 누님이 슬슬 걱정되는지 본인 회사 대리를 만나보겠냐는 둥 은근한 입김을 불고 있다.
누군가에 대한 깊은 마음은 아침부터 고민하는 점심메뉴와 같은걸까? '오늘은 꼭 평양냉면!' 아침 출근 댓바람부터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한 젓가락 뜨고나면 '아, 생각했던 맛이 아니네!'하고 시들해져 버리는 것? 이제는 천국에 계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출판사 직원으로부터 '육필 원고를 쓰는 이는 당신뿐이다' 라는 말을 듣고는 워드를 다루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척)하며 '시대여, 나를 버려라!' 하고 통쾌한 일침을 가한다.
이 시대의 사랑이 알량한 점심메뉴와 동급으로 추락하고 있다면, 나도 역시 이 시대를 향해 한 방 날려야지. '시대여, 이왕이면 뷔페로 준비해다오!'
웃자고 한 말이고, 아무튼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 또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과 '진정한 자아 찾기' -대표적인 작품이 <겨울왕국> - 가 꾸준히, 또 열렬히 소비되는 걸 보면 혀 위의 사브레 비스켓 같은, 퍽퍽하고 버석거리는 현실을 다들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인정해! 인정하라고! 당신들도 사실은 반짝이는 별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거라고!
요즘 틈만 나면 사랑타령이다. 어찌 기도를 괜히 부탁드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꾹 닫아둔 감정들이 뚜껑을 깨부수고 튀어나온다. 어쩌면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일수도 있겠지. 아직도 좋아하는 마음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용감하고 (찌질하게) 고백하고, 용감하게 거절당하... 쉬마.
어쨌든 나는 별같은 사랑에 빠지고 싶다. 보너스로 손가락 위에 별도 얹어준다면 땡큐베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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