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꽃신.
어려서부터 세계 각국의 동화나 설화 읽기를 좋아한데다 타고난 기억력까지 겹쳐, 왠만한 이야기는 여간해서 몸 속 어딘가에 고이 넣어두고 있는 편이다. 오늘은 '원숭이 꽃신'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한다.
원숭이는 본디 신발이 필요없는 동물이다. 맨발로 거친 땅도, 나뭇가지도 거침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느날 원숭이 마을에 너구리 한마리- 몰고가세요~, 농심 소속인지는 모를 -가 찾아왔다. 예쁜 비단 꽃신을 든 채로. 예로부터 너구리하면 교활함의 상징 아니던가. 너구리가 원숭이 마을엔 어인일일까. 꽃신을 한번만 신어보라는 너구리의 청에 원숭이들은 코웃음을 친다. 시험삼아 한 번 신어보지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꽃신을 신은지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보송보송 꽃신이 편하고 맨발로 땅을 딛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굳은 살이 박혀있던 발바닥은 어느새 말랑말랑해졌고 이제 원숭이들은 신발없이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구리가 원숭이에게 사정 사정 했지만, 이제는 원숭이가 너구리에게 제발 신발을 팔라고 사정하는 신세. 너구리는 신발값을 점점 높게 부르더니 급기야 나중에는 원숭이를 종 취급하며 자기를 업고 다니게끔 명한다. 원숭이는 꽃신을 신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울며 겨자 퍼먹는 심정으로 너구리를 업는다.
꽃신은 사랑과 닮았다. 굳이 필요치 않았는데 한번 그 맛을 보고나면 헤어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꽃신의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감촉 역시 사랑의 속성과 꼭 닮았다. 눈 두는 곳마다 온통 핑크요, 세상 천지가 누수라도 된 듯 사방에서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 사랑을 잃고나서 다시금 사랑을 찾아 헤메는 것도 맨발로 까칠까칠한 바닥을 디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꽃신을 신고 있는데 혼자 다시 까슬한 바닥을 디디려니 어렵고 성가시고 서럽고 불편해온다.
원숭이는 꽃신을 신기위해 종이 되었다. 기꺼이 종이 된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종이 되었다. 꽃신과 사랑의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꽃신도, 사랑도,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 희생이 얼마만큼 기꺼운가 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내가 10을 주었으니 너도 10을 달라는 계산은 사랑의 본질에 위배된다. 사랑은 100을 주고서 0을 얻을 수도 있고, 1을 주고서 100을 얻을 수도 있다.
얼마전 결혼한 친구를 만났는데 '나만 늘 설거지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는 생각으로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희생정신이 없다'라는 한마디로 함축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십년을 넘게 봐온 친구인데, 그동안 자기 입장만을 안일하게 챙기는 친구가 아닌줄 알기에 직접 물어보았다. 친구는 '인정을 받고 싶다' 라고 했다. '아, 당신이 나를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구나.' 라는 상대방의 마음. 일의 똑같은 분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기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 너구리는 자신을 업은 원숭이를 업신 여긴다. 그러나 원숭이도 너구리가 꽃신이 없다면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다시는 업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당한 설움과 모욕에 치를 떨며 너구리 배를 밟아버릴 수도 있다.
꽃신과 사랑은 다르다. 당신이 가진 꽃신이 그 무엇이든간에, 당신이 가진 꽃신을 어쩌다 잃어버려도 누군가는 당신을 묵묵히 업어줄 것이다. 꽃신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누군가 나를 업어주면, 업어준 그 등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처음엔 꽃신같아도, 꽃신같은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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