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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 시들지 마시오

 

 

 

 

무모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며칠전 읽은 사노 요코 할머니의 <~뭐라고> 시리즈 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바로 욘사마에 대한 부분. 한국에선 사실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욘사마가 일본 열도 아줌마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한류스타로 급부상하지 않았던가. 욘사마에 광분하는 일본 아줌마들을 보면서 단순히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주변 어디에서도 욘사마에 열광하는 아줌마는 물론, 또래도 잘 보지 못했으니까. 일본 여자들은 머플러 두른 남자를 좋아하는건가? 라고 막연히 짐작해왔을 뿐이다. 그리 큰 관심도 없었고.

 

 

사노 요코 할머니 역시 일본의 여자였던지라 금세 욘사마에 빠져 버린다. DVD 플레이어까지 들이고 욘사마의 출연작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의 DVD를 대량 사들인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웃고 울며 정신없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지내는 것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라며. 그러나 사노 요코는 정말 대단한 할머니이다. 자신도 모르겠는 이유 불분명의 심장박동과 용솟음치는 눈물을 분석해낸다. 나는 몇년 전 한참 <시크릿가든>에 빠져 지낼 때, TV앞에 무릎까지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김태평(현빈의 본명이다) 씨랑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라는 알량한 욕망뿐이었다. 한창 뭔가를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쪼개고 쪼개야 마땅한 젊은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물을 얼굴도 모르는 저 일본의 할머니 몫으로 떠넘겨 버리다니. 자, 알량한 젊은이의 욕망은 저만치 밀쳐두고 대단한 할머니 사노 요코의 저서 <사는게 뭐라고>220 페이지, '늙은이의 보고서'라는 꼭지를 살펴보자.

 

 

"어느날 나는 화사한 마음과 전혀 관련 없는 10년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한류 열풍은 허구의 화사함에 의해 일어났다. 나도 빠져들었다. 아아, 즐거운 1년이었다. 한류 붐이 끝나자 나의 짝퉁 화사한 마음도 먼지투성이가 되어 죽었다. (중략) 동년배끼리 모이면 반쯤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모두들 화사한 마음은 어찌한 것일까."

 

 

그렇구나. 일본 아줌마들의 욘사마 열풍은 충족되지 않은 화사한 마음에 대한 대리 만족 같은 것이었구나. 나는 일본인의 연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구석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들끓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부글부글 끓는 냄비뚜껑을 돌로 지그시 누르는 것인지, 애당초 뭉근하기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을 때 할 수 있는 요란한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이 데려온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눈에 흙..."으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흙 드립도 일본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간섭이라고 들었다. 일본은 서로간에 '요란의 상한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남자들은 사랑에 빠지면 확실히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 드러난다. 한살 터울의 남동생은 2년 동안이나 등록금을 내면서 본인의 학교가 아닌 여자친구 학교를 따라 다녔는데, 2년 뒤에 학사경고 종이조각이 집으로 날아오면서 그간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때 아버지는 몸져 누웠다. 한 학기 500만원을 호가하는 돈도 돈이겠지만 아들에게 당한 배신에 치를 떨었으리라. 작년이었나, 일본에서 '카베동' 열풍이 불었던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간다. 여성을 벽에 몰아넣고 한쪽 손으로 박력 있게 벽을 치는 행위를 일컬어 '카베동'이라 하는데, 일본 드라마에 이 장면이 나온 후 일본은 한동안 카베동에 푹 빠져 있었다. 벽치기를 대신 해주는 남성을 비롯한 각종 아르바이트도 생겨났다고 들었다. 한국이었으면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선 '뭐야 이 미친놈은' 이라고 생각했을 법 하고, 드라마라 하면 '뭐야 저 시대에 뒤떨어진 설정은' 이라고 생각했을텐데. 그래서 당연히 벽치기 같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한국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겠지만, 일본 여성들은 마음 속의 화사함을 탕진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들끓는 남성들을 TV에서 발견하고는 홀딱 반하는 것이다.

 

 

일본의 한 케이블 채널에서 본 '츤데레 체험 카페'도 떠오른다. 남성이 까페에 입장하면 여성 종업원은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남성 손님의 애타는 몇 번의 부름에 겨우 메뉴판이나 던져주고는 음식도 갖다주지 않거나 아무렇게나 턱 내다준다. 어느 일본 남성이 이런 하대를 받아봤겠는가. 그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새빨개지려는 찰나, 여성 종업원은 갑자기 둘도없는 천사소녀 네티로 변신해 그를 달래고 어른다. 미안하다는 연발하며 밥을 떠 먹여주고 갖은 아양과 교태로 그의 마음을 녹게 만든다. 그걸 보면서 "역시 변태 국가 답구만! 돈내고 저런걸 즐기러 가다니." 중얼거리곤 채널을 돌려버렸는데, 그들도 인간인지라 마음 속의 화사함을 그런 식으로라도 고요히, 폭발적으로 배설해야만 하는 것이다. 유독 일본에 오타쿠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사람에겐 존재하는 '요란의 상한선'이라는 것이 미미쨩에게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 큰 눈망울로 웃고만 있는 미미쨩과 함께 화사함의 끝판까지 안심하고 달려본다.

 

 

'무모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앞뒤를 잘 헤아리는 신중성이나 꾀가 없다'고 풀이한다. 일단 좋으면 뛰어들고 보는 것이다. 무모함의 대명사가 사랑이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면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되고, 만약에 잘 안되거나 사귀더라도 중간에 헤어지면 어떡하지...라고 머릿 속이 빙글빙글 돌아가면 그건 무모하지 않은 것, 즉 마음에 화사함이 없는 것이다. 마음에 화사함은 죽을 때까지 사시사철 올곧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가 아니라 한 때 반짝 어여쁘게 피어나는 꽃송이와 같은 것인데, 마음 속에 화사함이 한껏 피어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모른다. 결코 모른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라고. 화사함을 화사할 때 누리기에는 그 꽃송이의 주인들이 너무 어리고 겁이 많다. 마흔 줄에 들어선 선배 하나가 어느 날 "요즘 애들은 어떻게 그렇게 실패를 안 하고 잘만 하는거지." 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는데,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고 생각대로 착착착 진행되어야만 하는, 무턱대고 무모하기에는 무모해진 시대를 버티며 살다보니 다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뭐든 미리 내다보고 염려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 물이 마음 속의 화사함에까지 들어버린다.

 

 

신나게 무모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고 특권이다. 일단 앞으로는 점차 무모할 일이 줄어든다. 사노 요코 할머니도 그랬던 것처럼 마음 속에 화사함의 지분이 줄어든다. 그러고싶은 마음 자체가 슬금슬금 없어진다. 그리고 젊은이의 무모함은 쉽게 이해받는다.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누구나 마음 속에 꽃 한송이를 키워 본 시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무모함은 쉽게 이해받고 용서된다. 사랑 앞에 내가 가장 무모했던 때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아예 살던 도시를 떠나버린 것이다. 그 때가 스물 다섯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친...' 하고 혀끝에 농도 백프로의 쓸개즙 맛밖에 안 느껴지지만 그 때는 연인의 얼굴을 그 도시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는, 아니 그 사실보다는 가능성 자체를 품고 있는 도시가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 나중에 그 도시의 방세며 생활비로 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으니 이쯤되면 나도 동생을 욕할 자격은 개코도 없겠다. (훌륭한 동생아, 우리는 사랑 앞에 무모해봤구나. 멋지구나. 그렇지만 앞으로는 웬만해선 그러지말자. 뒷수습이 힘들더라. 너도 알지? 찡긋)

 

 

그래도, 그러니까 마음 속에 화사함이 힘껏 피어있을 때 아직은 무모할 수 있을 때, 우리 무모해지자. 사노 요코 할머니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본인의 입으로는 '화사한 마음 따위' 라고 표현했지만 죽을 때까지 박력째지게 화사하던 여자였다는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에 3억짜리 녹색 재규어를 샀으며, 뼈가 끊어지는 고통에 힘들어하면서도 절뚝거리면서 이웃 병원으로 가서 친구가 말했던 잘생긴 의사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한다. 화사함은 저절로 피어나지만, 오래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꽃을 키우는 일이 늘 힘든 것처럼.

 

 

그러니 아직 화사한 당신

시들지 말라.  

시들 것을 염려해 피어나지 않는 꽃은 없듯이, 화사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화사하라.

내게 하는 부탁, 아니 명령이기도 하다.

 

 

그대, 시들지 마시오.

 

 

 

 

 

 

 

* 이 글은 https://brunch.co.kr/@ringringstar/18 에서 조금 더 다듬어진 상태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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