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가래떡을 네 줄이나 넣고 홍시 떡볶이를 만들겠다며 법석을 떨다가, 비싼 꿀 반병을 몽창 쏟고는 발바닥에 끈적이는 꿀물을 여기저기 묻혀가며 오전을 보냈다. 꽤 중요한 메일이 왔는데 핸드폰으로는 첨부파일을 열어볼 수 없어 2주만에 컴퓨터를 켰고,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고는 (별 내용이 아니었음!) 오랜만에 키보드로 글을 썼다. 핸드폰으로 틈만 나면 끼적인 블로그의 글들도 레이아웃을 정리하려고 들어가보니, 나름 잘 되어있어서 놀랐다. 요즘 세상 참 좋구나. 생각지도 못하게 크게 들어간 내 사진만 크기를 좀 줄였다.
오랜만에 키보드를 만지니 글을 쓰고 싶어서 이틀전 읽은 <사는게 뭐라고> 독후감상문을 썼다. 늘 생각하는거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쓰겠다, 저렇게 쓰겠다' 머리가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손가락이 쓰는 것 같다. 핸드폰을 잡으면 뭔가를 얘가 알아서 쓰고 있고,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주니 신이 났는지 꽤 긴 글을 지치지도 않고 잘 쓴다. 그리고 업로드 하는 사이에 아예 날아가서 새로 써야했는데 첫 편보다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새로 쓰는 짜증나는 노동도 잘 견뎌주었다. 고맙다, 아름다운 손가락아. 너는 디자인도 기능도 훌륭하구나.
글 제목은 '시들지 마시오' 이다. 들끓던 작년 여름, 광노씨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방 한켠에 세워둔 '시들지 마시오' 라는 문구와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마음 속에 꼭 갖고 있다가 꺼냈다. 나는 자각있는 인격체이므로, 어느 유명 작가처럼 누군가의 글을 냅다 표절하고는 '이젠 나도 나를 모르겠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하긴 싫기 때문에 -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스며드는 것과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는 당연히 그 작가를 싫어하게 됐다 - 문득 광노씨에게 문득 연락을 했다. 광노씨야 어차피 마리텔에도 몇 번 나오고, 네이버 인물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인(?)이니까 실명을 거론해도 전혀 개의치 않겠지. 그렇죠 광노씨?
글을 다 날려먹고 다시 쓰고는 한숨을 돌리는데, 마음 속에 꼬물꼬물 피어나던 의혹이 한방에 정리되었다. 설 지나고 발표 날거라던 어느 유명 외국계 대기업의 채용 탈락 소식이었다. 하아. 유명, 외국계, 대기업의 쓰리 콤보였는데. 어느 분이 추천을 넣어주셔서 급하게 친분있는 번역가 언니에게 검수까지 부탁하며 영문 이력서를 준비했고 연봉 협상의 협상 따위는 필요도 없을만큼, 내 삶에서는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높은 연봉이었다.
아티스트는 무릇,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일상의 어느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몸과 마음 속에 잘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망원동에 살다가 다가오는 3월엔 제주로 이주하는 가수 한 분은 노래가 너무나 세밀한 일상이라 좋았다. 태국에 놀러갔다가 누구 누구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노래만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새로 만든 노래는 이웃의 누구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랬나 어쨌나. 아무튼 노래가 이토록 소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결심했던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세세하고 세세하게 생겨먹은 인간이니 - 이제는 나에게 '어쩜 그렇게 예민해? 어쩜 그렇게 눈물이 많아? 어쩜 그렇게 순진해? 어쩜 그렇게 애 같애?' 라며 쏟아지는 비난에 대한 방패막이 생겼다. 나 원래 그래. 그러는 너희들은 그렇게 둔하고 눈물도 없고 순진하지도 않고 어른 같아서 참 좋겠네. 다들 생긴대로 사는거지. 안 그래요? - 더 세세해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남들이 보건말건 친구들의 결혼식장에서 더는 눈물을 참지 않을 것이다. 참아도 줄줄 흘러서 사연있는 여자처럼 끌려나가는 판에, 안 참은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무튼 나는 아티스트의 자세한 태도를 견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물론 월급도 떼여서 자금도 없지만 어쨌든 넘쳐나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숨겨진 원동력이기도 했던 유명, 외국계, 대기업의 삼박자를 잃어버린 마음의 맛에 대해서 기록한다. 비릿하다! 이건 비릿한 것이다! 씁쓸하진 않다. 수화기 너머로 높은 연봉과 어마한 복지에 대해서 들었을 때 이미 내 머릿속 영사기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칼퇴를 하면 이것을 배우고, 저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 해외 파견도 잦을테니 여행에 대한 갈급한 욕망은 대충 이쯤에서 타협할 수 있을테고, 회사에 가깝게 집을 옮기는게 좋지 않을까. 회사 안에 헬스장도 당연히 있겠지? 우후후후. 업무 자체는 내가 자신이 없는 분야였다. 그래서 업무적인 것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 외의 것들로 업무의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커버할 욕망들로 득시글했다.
비릿한 맛인 이유는 뭘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빤히 정해져 있으면서, 밑장 빼기도 이젠 못 할꺼라는거 알면서 자꾸만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모른척 해 온 시간이 너무 긴 것이다. 빤히 알면서도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모른척을 해온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써요. 잘써요' 해줘야 그제야 겨우 한 줄이라도 끼적거릴텐가. 글을 쓰면서도 행복했는데, 글을 쓰지 않을때는 더 행복했다. 마감이 없어서 좋았고 뭘 써야할지 뇌세포가 터질듯이 쥐어짜내야 하지 않아서 좋았다. 글을 쓰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도 공모전 따위에는 한 번도 원고를 내밀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모든 작품들이 고민과 고민 속에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어하지 않는 게으르고 알량한 내가 여기 있다. 그러면서 서점에서 한참 못한 글을 볼 때면 '아니 이걸 책이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내가 있다. 그 사람은 적어도 나보다 용감했다. 적어도 세상에 자기를 던질 줄 알았다. 내가 감히 누구에게 비겁하다고,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면 안된다고 비날할 자격이 있나? (미안하다 유선.)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은 잘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제야 나의 비겁함에 비릿한 맛이 드는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 걸 알겠으면서도, 안 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요' 하지만, 돈으로 커버할 수 있다면 꿈 따위는 얼마든지 내팽개치고 싶은 알량하고 알량한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비린 것이다.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어정쩡 제자리에 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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