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꼬박 한시간을 자고는 대전쯤에서 눈을 떠서 줄곧 핸드폰을 만지다가 서울에 도착했다. 지하철 출구를 잘못 찾아서 좀 걸어야 했는데, 역시 내 안의 투덜이 스머프님께서 때를 놓치지 않고 한바탕 투덜투덜 하신다. 서울 공기가 탁하다, 부터 시작해서 배가 고프다, 왜 출구를 못 찾아서 사서 고생이냐, 오르막은 또 어찌 오를 것이냐, 투덜투덜. 내 품의 시월드, 내 안의 시어머니.
집에 오는 길에 고구마 만주를 샀다. 동대구역에서 살까말까 망설이다 안 샀는데, 기어코 서울역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나는 좋아하는 먹을 것 앞에서는 승냥이처럼 집요한 구석이 있는데, 특히 디저트에 대한 집념은 지극에 가까운 것이라서 도무지 물고 놓을 줄을 모른다. 왕왕!
고구마 만주를 물어뜯으며 집에 겨우 도착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너무 좋은 향기가 퍼져서 깜짝 놀랐다. 늘 켜는 향초향도 아니고 쌉쌀하고 기분좋은 향이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집을 나서기 전에 마신 계피차의 잔향같기도 하고. 어쨌든 모든 것이 순전히 나의 의도대로 가지런히 놓여진 내 공간에 들어서니 비로소 마음이 안정된다. 이 맛에 집 나설때마다 부지런히 청소하는 것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나머지 만주를 마저 물어뜯고는 신이 나서 주스를 벅벅 갈아마셨다. 새로산 믹서기로 말할 것 같으면 동생분께서 취직기념으로 친히 하사하신 믹서기로서, 그동안 믹서기가 없어서 주스를 못 갈아먹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 나는 본래 주스를 안 좋아한다 - 틈만 나면 단 것들을 몽창 들이부어 갈아버린다. 믹서기가 생긴 후로 특히 바나나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넣어 주스를 양껏 마신다음, 아까 몹시 기분이 꼴랑꼴랑하던 차라 받지못한 아버지의 전화가 생각나 전화를 드렸다. 잠에서도 빠져나왔고,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2월 말미에 잡혀있는 콘서트 하나뿐.
마녀, 혹은 마법사라 믿고 있는 저 먼 대륙의 구루에게 '잊지 못하고 줄곧 그리워함은 결국 집착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더니 답신이 왔다.
'그리워하세요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의 대상을 욕심내지 말고
아름답게 그리워하세요~'
아름답게 그리워 할 것.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겠으면서도 전혀 모를듯 하기도 하여 아름답다 와 그리워하다 를 각기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사랑하여 몹시 보고싶어하되
그 속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찾으라는 뜻으로
풀이가 되었다.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줄도 새삼 알았다.
욕심내지 않고 즐겁게 마음깊이 사랑할 것.
욕심을 낸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도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일진대, 이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정답이겠구나. (내가 무슨 달라이라마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나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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