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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0월 29일 : 낮과 밤

 

△ 결국엔 바빠서 동동거리면서 도망자처럼 집을 뛰쳐나올꺼면서, 이 바쁜 아침에 귤 피클을 담았다.

 

 

 

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밤에 자주 문자를 보내면서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밤은 괴물같아서 이상한 말들을 다 꺼내게 된다' 라고. 괴물같은 밤의 축축함을 노래한 예술가들은 워낙 많으니 따로 꺼내진 않겠다만, 나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다. 다같이 야근을 할라치면 몸은 의자에 앉아있지만 이미 넋은 반쯤나가있고 머리는 지끈지끈해 '어서 자고 싶다' 라는 생각뿐이다. 몇 달간 같이 일하며 나의 패턴을 알아챈 동료들은 해가 지고 창밖에 어둠이 내리면 내 등을 떠민다. 나를 제외한 모두의 글이 명료해지는 밤에 나는 혼자 멍청해진다.

 

 

재밌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글은 밤에 쓴다' 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부서의 직원과 얘기를 하다가 '나는 졸려서 야근을 못하겠다' 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밤에 안쓰면 글을 어떻게 써요?' 라고 되묻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샤워를 하고 잠을 온전히 깨고 모든 것이 환한 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머리에 불이 뿅 들어온다. 그제서야 어젯밥 뒤엉켰던 생각이 정리되고 갈피를 못잡던 글의 흐름도 방향을 찾는다. 

 

 

같은 층에 일하는 일러스트 작가가 하나 있는데 그녀도 종종 같은 질문을 듣나보다. 그녀도 낮에 그림을 그리고 웬만해선 결코 야근하는 법이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밤에 그림을 그리는 줄 알고 있더란다. 밤은 확실히 어둡고 축축해서 그를 틈타 내면의 은밀한 것들을 왁!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벌건 대낮에 꺼내는 게 좋다. 밝고 환하고 산뜻하니까. 무엇보다 모든 것이 또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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