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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9월 1일이 오셨다

 

△ 캐치 !

 

 

 

 

어 비온다. 지금은 자정을 넘긴 00시 53분. 바깥이 자글자글해 창문에 매미라도 붙었나 싶다가 그 소리가 요란해 나가보니 비가 뚝뚝 떨어지는구나. 9월 1일은 하루종일 바빴다. 어제 3차까지 갔다가, 물론 마지막은 건전한 팥빙수와 케이크로 끝났지만 아무튼 집에 돌아오니 제법 피곤했다. 아마 12시를 얼마남겨두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뭐 이것저것을 하다가 문득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9월이 곧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번쩍 시계를 봤는데 그때가 딱 12시. 야호. 아끼는 순간이 다가오는걸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걸 좋아하고 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새해가 되면 다글다글거리는건 두말할 것 없고- 정말 기뻤다. 마침 깜깜한 방에 초 하나 달랑 켜져있기도 했고. 집에 들어와 언제 켜두었는지가 기억 안나긴 하지만.

 

 

 

9월은 한해중 나에게 의미가 가장 큰 달이다. 계절로는 봄을 가장 사랑하지만 달력을 꼽자면 9월을 가장 아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9월을 무척 좋아한지는 이미 십년도 훌쩍 넘었기 때문에 굳이 그 이유를 되새겨 본 적도 없다. 다만 9월이 되면 몇 가지 나만의 의식을 즐기는데, 9월의 시작과 동시에 듣는 노래가 있고 읽는 어떤 책의 페이지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 바쁜 와중에 그 페이지를 몇 줄 읽었다. 당연히 노래도 들었다. 그 노래들 중에는 성시경의 목소리도 있다. 트라이 투 리멤버, 더 카인드 오브 셉텐버.

 

 

 

오늘 굉장히 바빴다. 간밤에 꾼 꿈부터 바빴다. 어제 점심 무렵에 잠깐 배드민턴을 치다가 종호가 라켓으로 내 오른쪽 어깨를 내리찍는 사고가 있었다. 아. 남자의 힘이란. 그 와중에 뭔 상남자처럼 "난 괜찮으니까 계속 쳐요!!!" 라면서 비장한 각오로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가. 종호가 미안해하며 농담으로 "이걸로 경쟁자를 제거했어요." 라고 웃었는데, 그 말이 은근히 머리에 남았던지 간밤에 꾼 꿈에는 내가 잠깐 잠든 사이 사람들이 몰래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하는 풍광이 벌어졌다. 잠에서 깬 나는 얼마나 억울했던지! 종호가 미안함을 갚을셈으로 꿈에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차를 끌고 우리집 앞으로 와서 "기자님!!!! 빨리 출발해요!!!! 라켓은 준비됐어요!!!!" 라며 트렁크를 열어 삐까뻔쩍한 배드민턴 라켓을 보여주던 장면. (오늘 말해주니 한참을 웃더라.)

 

 

 

하루종일 취재를 다녔다. 중고서점도 뒤지고, 놀이공원도 뒤지고, 더워 뒤지고 (응?). 놀이공원에서는 잠깐 회전목마를 탔다. 물론 취재의 일부분이다. 한낮의 자그마한 놀이공원이란,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때우나 입이 삐죽나와있는 퉁퉁한 여직원에게 '회전목마 탈껀데요' 라고 머쓱하게 5천원짜리 티켓을 내미는 일. 혼자서 회전목마에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았다. 회전목마 등에 올라서 하늘을 잠깐 올려다봤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전목마는 곧 멈췄다. 이 땡볕에 혼자 타는데 그냥 좀 몇 바퀴 더 돌려주지.

 

 

 

동서울터미널에서는 버스티켓이 필요해서 하차정류장에 버티고 서있다가 이 버스 저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티켓을 구걸했다. 혹시 티켓 가지고 있으세요?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다. 두 유 해버 버스 티킷? 엄...한쿡말 몬해요. 외국인도 털어봤으나 없다. 휴가를 나왔는지 많은 군바리들이 손에 티켓을 꼭 쥐고 담배를 피거나 꾹 서있거나 했다. 저 티켓 뺏고 싶다, 라고 중얼거리니 종호가 막 웃었다. 종호씨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때요? 아 진짜 왜 그러세요. 아 진짜.

 

 

 

정말 싫었구나. 마지막으로 어떤 남자에게 '버스 티켓 있으세요?' 라고 물었더니 버스에 두고 내렸단다. '종호 가!!!!' 남자가 내린 버스를 종호가 곧바로 쫓아 올라탔다. 다급한 표정으로 몇 사람을 더 붙잡고 물어보는데 종호가 땀과 더위에 쩌든 표정으로 내린다. 그리고 내미는 티켓 한장. 강릉 발, 동서울 도착. 종호!!!!!!!!!!!!!!!!!!!!!!!!!!!!!! 전쟁나간 남편이 승리하고 돌아오면 이런 기분인걸까.

 

 

 

돌아오는 길에서는 내내 옛날 만화영화 노래를 불러제꼈다. 꼬마 자동차 붕붕 노래 알아요? 나 완전 붕붕 팬이었는데. 한 노래가 끝나면 또 다른 노래로 혼자 릴레이를 이어갔다. 호호 아줌마, 쥬라기 월드컵, 꾸러기 수비대, 이상한 나라의 폴... 내 머리에는 노래 주머니가 있는 것 같다. 이 많은 옛날 노래들을 다 기억하는걸 보면.

 

 

 

*

 

 

취재 다녀와서 정말로 가방만 내려놓고 회의 참석. 특집 주제는 엎어졌으므로 다시 짜야한다. 퇴근하는 내 어깨가 좀 지쳤나보다. 선배에게 요즘 무슨 일 있냐는 메세지 한 통. 두 달전에 팔뚝에 벌레를 물렸는데 그게 통 가라앉지 않던 참에 오늘 우연히 물집을 짜게됐는데, 그게 곪아서 안에 피고름이 찼단다. 으. 퇴근 후에 피고름 짜는 느낌이란. 고개를 돌리고 벽에 걸린 시계만 멍하니 보는데, 물집을 짜던 언니가 "안 아파요?" 라고 묻는다. "저 아픈거 되게 잘 참아요." 이번엔 아예 체중을 다 실어서 물집을 짜던 언니가 재차 묻는다. 진짜 안 아파요?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내가 이상했나보다. 나도 팔뚝이 뜯겨나갈만큼 아팠는데. 나는 아마 독립투사였으면 고문은 잘 참았으려나. 쪼그만 물집하나 짜면서 그런 것에 비할 바가 아니긴 하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다시 대답했다. "저 아픈거 진짜 잘 참아요. 뭐든." 어쩌다 그런걸 다 잘 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잘 참았나. 참아야했나. 피식.

 

 

 

목에서 피냄새 올라올때까지 운동장을 막 뛰고 싶었는데 몸은 워낙 게으르니까, 반창고를 꾹 붙인 팔뚝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아차. 그래 이번 토요일에 결혼식이 있었는데. 청첩장 다시 보내달라고 했더니 대뜸 축가를 부탁한다. 농담인줄 알았다. 바빠 죽겠으니 축가를 해달란다. 무슨 3일 남기고 축가를 부탁하느냐, 연습은 언제하느냐. 아 나도 부르는데 너도 불러. 아 신랑이 부르는거랑 축가 부르는 사람이 부르는거랑 같아요. 걍해좀.

 

 

 

어우.

정성껏 불러는 드릴게. 자료 화면 다 캡쳐해놨다. 나중에, 나중도 아니잖아!!!!!!!!! 어쩌구 저쩌구 원망하기만 해봐.

축가 고르는 내 모습도 웃기다.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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