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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참 똑같은 사람

 

 

 

 

어제 잔뜩 취했다. 빈속에 맥주 한잔을 쪼로록 마셨을 때부터 이미 술이 확 올랐는데 그 뒤로 어쩌다보니 아마 근 서너해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로 많은 양을 마셨을꺼다. 일어나서 잔을 들고 음악에 비비적대기까지 했으니.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매력적이시네요.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술 살게요. 옆에 앉아줘서 고마워요. 눈이 참 예쁘세요. 다음엔 우리 다시 못 만나겠죠? 라고 뻐꾸기를 부화시키는 과정도 묵묵히 앉아 듣고 있을정도로 취했다.)

 

 

두 시간을 겨우 잤다. 자다가 왼쪽 다리를 움켜쥐고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끙끙대다 다시 잠들었다. 고등학교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 내가 술잔들고 그렇게 오래 서 있었나. 왠 다리에 알이 이렇게나 잔뜩 뱄나. 하루종일 왼쪽 다리가 끙끙거린다. 두 시간을 자고 출근해 완성했던 글을 다시 다 엎고 하루종일 쓰고 나니 완전 녹초. 집에 오니 힘이 쪽 빠져서 마음으로는 '아 일찍 자야지'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일찍 자는 인간이 아니며 집에서 가만히,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걸. 잠을 버틸 정도로.

 

 

오늘도 완전 너덜너덜해진 몸을 끌고 집에 왔지만 역시 자지 않고 가만히 있다. 나는 참 똑같다. 티비 소리가 공간을 메우는게 싫어서 티비를 안본다. 그냥 심심하게 조용하게 아무소리도 없이 가만히 있는다. 음악을 들을때는 맨날 똑같은 음악을 듣는다. 집중할 때는 피아노 곡을 듣는데 역시 똑같은 곡만 듣는다. 중학교 때 시험공부하며 듣던 곡을 아직도 듣는다. 하루종일 똑같은 노래를 듣는다. 노래가 지우개라면 지우개를 싹 다쓰고 지우개 가루를 모아 겨우 또 뭔가를 지우는 느낌이랄까. 사람도 똑같이 생긴 사람만 좋아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네 남자친구는 다 똑같이 생겼어.' 라고 말할 정도로 얼굴이 하얗고 눈이 동그랗게 큰 사람만 좋아했다. (남자가 얼굴 하얗고 눈이 크고 둥글면 99% 미남이다. 코 입은 도울뿐.) 잠은 딱 여섯시간만 자고 보통 6시에 눈을 뜬다. 과자는 늘 초코발린 과자만 먹는다. 유학을 할때는 반년동안 매일 돌솥비빔밥만 먹었던 적도 있다. 한번 좋아한 사람은 똑같이 꾸준하게 좋아하고, 한번 싫은 사람은 미안하지만 미안하게도 꾸준히 미워한다. 국민학교 2학년때 백화점에 처음가서 포스트잍에 영혼을 바쳤는데 아직도 쓰리엠 포스트잍이라면 환장을 한다. 똑같은걸 부지런히 반복하는데 타고 난 종자다.

 

 

똑같은걸 그렇게 잘하면서도 이상하게 일은 똑같은걸 못한다. 내용이 자꾸만 바뀌어줘야한다. 사는 곳도 마찬가지.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다. 자꾸만 더 멀리, 더 새로운 곳으로 가서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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