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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8월 1일 : 남편이 필요하다

 

△ 어째야하지

 

 

 

 

몸살이 났다. 이사온지는 2주가 지났지만 한달이상 주말내내 출근했었고, 평일의 거의 대부분을 야근만 하다 보내다보니 참 오랜만에 쉰다는 느낌. (그래봤자 커튼이 없어서 여섯시에 깼다!) 게다가 이번주는 잡지 마감이라 밤늦도록 줄곧 교정을 봤으니 몸살이 안 나는게 이상하겠군. 모든 일을 끝내고 어제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다. 대표님이 냄비와 불판을 하사해주셔서 들고 이고 퇴근했다. 삼일정도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는데, 반찬 하나 없이 덜렁 밥만 들어있는 내 도시락을 보고 대표님이 "가져가!" 라며 회사에 비치된 냄비와 불판을 주셨다. 반찬 좀 해먹으라고. 감사합니다. 엉엉.

 

 

겨를이 없으니 새 공간에 아직 아무것도 채우지를 못했다. 커튼이 없어서 새벽에 일찍 깨고, 거울이 없어서 옷매무새를 확인할 길이 없으며, 조리도구가 없어서 - 숟가락 하나도 없다! - 요리를 할 수 없고, 빨래건조대가 없어서 빨래를 할 수 없으며 달랑 하나있던 도시락 통은 회사에서 유실되어 어제는 아예 사기로 된 밥공기에 밥을 담아 가져갔다. 이게 무슨 도시락이냐고 이건 그냥 밥이라고 누군가 놀렸다.

 

 

 

△ 엉망진창이라고 신고 들어온 내 책상.

두 명이나 내 책상 사진을 디밀면서 이것 좀 보라고 하더라. 힘들어서 그래. 힘들어서.

 

 

 

오늘 점심은 이사 코스프레를 했다. 동네 중국집에 배달음식을 시켰다. 하나만 시키기 머쓱해서 두개를 시켰는데, 차마 방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음식이 배달되자마자 열린 문틈으로 그릇부터 덥석 받으며 "아, 제가 이사를 어제 와서요! 아하하하하!" 라며 방으로의 진입을 저지했다. "뜨겁습니다!" 배달원이 나를 뜨악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제서야 내 손바닥이 엄청 뜨거운걸 알았다. 앗뜨거.

 

 

살게 너무 많다. 커튼부터 어찌 해야하는데 줄자를 들고 창문 크기를 재보겠다며 어둥어둥하다가 줄자가 풀리면서 손등에 스크래치. 촤라라라라라락. 으악! 몸살 기운도 있는데 괜히 서러워서 하늘한번 봤더니 창틀에 친절하게 사이즈가 적혀있다. 3번이나 적혀있더라. 억울한 맘에 다시 줄자를 꺼내들고 사이즈를 재봤더니 적힌 사이즈가 맞다. (헣!) 블라인드 업체에 전화해서 물어볼 것이 있었는데 휴가를 가셨다고 하니, 괜히 부러울 따름이고 빨래건조대를 겨우 주문하고 거울을 고르려다가 디자인에 심취해서 한시간을 보낸 뒤 아직도 못 골랐다.

 

 

그러다 어제 문득 사촌동생이 인생고민을 한 것에 대해 좀 몰아간 느낌이 있어서 너그러운 조언을 줄 겸, 다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사진찍고 글 쓰는 것이 좋지만 직업과는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란다. 겨우 스물 한살이 왜 취업 고민을 하느냐, 인생에서 제일 예쁘고 소중한 시기다, 너는 초등학생 동생이 대학 들어가는 걱정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 지금은 그냥 군것질이나 하고 뛰어놀때다, 여행도 많이 가고 연애도 실컷 해보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너를 찾아라, 경험을 쌓아라, 삶은 어차피 너 행복하려고 사는거다...

 

 

사촌동생이 하트를 잔뜩보내며 '언니 고마워 난 역시 내가 하고 싶은걸 할래' 라는 메세지를 듣자마자, 이번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님께서 또 오랜만에 연락을 해오셨다. 내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그 남자친구가 마침 동생이 관심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내가 이래저래 가운데서 줄을 놨더랬다. 동생이 아무래도 그 회사에 가고 싶다며, 취직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해온다. 누나. 엘지 이제 완전 망한거 알아? 대기업도 함부로 못쓰겠어. 하도 망하니까. 그 형이 다닌다는 회사 있잖아. 공채가 백대 일이라던데. 한번밖에 없대. 중얼중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나니 아직도 거울을 못 골랐다는게 떠올랐다. 요즘 꽂혀있는 GS 망고 아이스크림이나 꺼내먹어야지~ 냉동실을 열었는데, 빈통이었다. 역시 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남길리가 없었구나.

 

 

줄자를 들고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에라 기타나 좀 잡고 둥기둥기 하다가 벌렁 누워버렸다. 얼마전 친구집에 있을때, 새벽에 벌레가 나와서 여자둘이 울며 질겁을 한 이후로 오늘 또 한번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블라인드 설치 어쩌구 저쩌구를 찾아보니 죄다 부인은 사진만 찍고 포스팅하고 설치는 남편들이 다 하고 있더만. 조립식 가구도 주문을 해야될 것 같은데. 집뜰이에 얼른 회사 사람들을 초대해서 온 김에 조립 좀 해달라고 눈물어린 부탁을 해야겠다. 망고 아이스크림은 배달 안되나요.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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