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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7월 9일 : 습

 

 

 

△ 서서히

 

 

 

 

오늘은 하루라는 시간에 걸쳐 서서히 차오르는 날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분명 <망원동 로마니>를 틀어놓고는 신나게 폴카춤을 추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촐싹맞다가 - 어제 입사한 신입을 마주쳤다. 머쓱 - 대표님의 좀 심한 장난에 마음이 울컥해서는 한번 터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침을 맞으면서도,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늦은 점심으로 샌드위치 하나를 먹고는 조퇴해서 두어시간을 잤다. 피곤하고 습기찬 하루.

 

 

오늘 방 계약이 있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녀왔다. 도배도 새로 해주고, 매트리스도 갈아주고, 냉장고도 새로 넣어주마 했던 약속은 어디가고 꼬장꼬장한 집주인은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아가씨. 내가 왠만하면 도배 해주는데 도배가 사람 몸에 안좋아! 더러우면 안하겠다고 해도 해줘. 1년동안 도배풀 냄새 맡으면서 살고싶어? 할머니 진정하시고요.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제가 분명히 지금 세입자분이랑 얘기할때는 이런 조건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시면 어떡해요. 매트리스도 새거야! 어떻게 2년마다 침대를 바꿔줘? 저 분이 들어올때부터 매트리스가 내려앉았다고 했어요. 뒤집어서 쓰면 되잖어. 원래 양면이야!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마! 공간을 꽉 메우는 소리소리소리소리들. 지친다. 친구에게 같이 와달라고 할 걸 그랬나.

 

 

소리가 얼마간 가라앉고, 싱크대 위에 가만히 놓여 땀을 흘리는 바나나 우유 하나를 지현우가 건넨다. 이거 드실래요? 물론 민간 지현우다. 지난 2년간 이 방의 주인이었던 그는 지현우를 닮았다. 난 그냥 지현이고. ('지현우 닮으셨어요' 라고 말했더니 '지현우가 누구예요? 좋은거죠?' 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지현우가 준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집주인과 계약서를 쓰고, 지현우와 지현우의 자전거와 함께 언덕을 내려왔다. 지현우의 완전 딱 벌어진 어깨도, 웃을 때 예쁘게 접히는 눈꼬리도, 오늘따라 예쁘고 예쁜 구름도 마음에 아무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회사로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대표님을 만나 깽값 삼만원을 받아내고, 어쩔 수 없는 야근모드로 책상에 몸을 파묻어보자. 오늘 하루를 날렸으니까. 회사 단체 메신저에 문득 뜨는 '지금 하늘 보세요' . 회사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잔뜩 예쁜 구름들 사이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잠시 미국에 있는 친구 생각이 났다가 서서히 별이 돋아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구름 사이로 돋아나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유 메이크 미 필 올라잇, 유 메이크 미 필 올라잇. 가만히 몇번을 읊조려본다. 지치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 이유없이 가만히 안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내 모든 하루가 말없이 괜찮아지는 한 사람이 있었으면. 오늘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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