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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오늘이 13일이 아닐텐데

 

△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

 

 

 

 

 

금요일. 그렇지만 13일이 아닐진대.

 

'그놈의 변태가 내 하루를 앗아갈 순 없다!' 라고 다짐해보지만 아침부터 기분이 구리다. 엊저녁에는 같이 사는 친구와 잠깐의 트러블이 있었고, 간밤의 꿈엔 요즘의 나를 짓누르는 온갖 주제들과 등장인물이 죄다 나와서 한바탕 열연을 펼치고 갔다. 일어나서도 영 찝찝한 기분에, 출근길 변태가 불꽃 점화해주시니 아침부터 불꽃놀이로구나. 마른 하늘에 불꽃이 펑펑 터진다. 점심시간. 무얼 먹을 마음이 나지않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힘없이 앉아있었더니 추가 업무가 떨어진다. 점심은 안 먹더라도 시간은 먹고 싶어요. 아무렴 점심+시간인데. 업무지시만 받고 벌떡 일어나 나와버렸다.

 

내 마음의 고향. 그래 던킨을 가자! 던킨. 이글이글한 빌딩숲을 열심히 걷고 돈 덕분에 그리 오래지 않아 던킨을 찾아냈다. 그래 마음의 양식! 치즈 베이글! 맙소사. '오늘은 정말 나를 울게 만들셈인가요'

 

 

△ 오늘의 브금 : 파리넬리 <울게하소서>

 

 

울 것 같은 눈동자로 '베이글은 없나효'를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원하시면 바로 꺼내주신단다. 감사함미다. 먹고갈거라는 말에 따뜻하게 데워주셨다. 마음의 양식을 곰곰 씹으면서 영수증을 계속 들여다본다. 12일 맞는데. 좋아하는 음악가가 어제 남긴 글이 생각난다. '슬픔은 안전장치. 그래서 모든 곳에 안전장치를 마련해둔다. 그리 기쁠일도 없지만 슬플일도 없어진다.' 라는 내용이었다. 픔은 안전 그물망 같은 것이다. 난 겁이 많아서 발이 닿는 곳마다 그것을 설치해둔다. 성가시긴해도 일순간에 박살날 위험은 줄어든다. 기쁠 일이 줄어드는 만큼 슬플 일도 줄어든다. 나쁘면 무미건조하게 좋게 말하면 담담하게 사는 방법이다. 언젠가 자유롭게 높이 나는 방법을 익히고 나면 그런게 필요없을 것도 같다. 나는야 축약의 왕.

 

곳곳에 슬픔 그물망을 마련해두고 싶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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